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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채무불이행 선언 임박

입력
1998.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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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화 또 폭락… 총리 “경제독재” 발표러시아 경제와 정치상황이 파국의 위기를 향해 빠져들고 있다. 4일 사실상 고정환율제인 통화위원회제도 도입과 세수확보를 골자로 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서리의 「경제독재」 극약처방 발표에도 불구하고 루블화는 전날에 이어 또다시 폭락, 전면적인 대외채무불이행(디폴트)선언이 임박하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총리인준을 둘러싼 정국긴장은 계속되고 있으며 군부의 움직임을 경고하는 발언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경제상황의 지표인 루블화 공식환율은 전날 달러당 13.4608루블에서 이날 16.99루블까지 추가 폭락했다. 앞서 전날 모스크바 은행간 외환거래소(MICEX)에서 루블화 가치는 이미 16.2∼18.7루블까지 폭락, 지난달 17일 평가절하조치 이래 70% 정도 하락했다. 특히 전자외환거래시스템(SELT)을 통해 거래된 루블화 선물가치는 4, 5일용이 각각 달러당 25루블, 30루블까지 떨어져 시장불신을 극명히 반영했다.

러시아 증시의 RTS 지수 역시 거래가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전날 종가 대비 6.4% 하락, 61.43의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3일에 이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루블화 속락에 따라 러시아의 전면적 디폴트 선언이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 러시아 경제분석연구소장은 3일 『전체 1,400억달러의 채무 가운데 러시아가 올해 지급해야 할 외화표시 부채는 총 60억달러이지만 연말까지 재정수입은 45억달러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때 투자자 손실은 7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상황을 타개할 만한 돌파구는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나마 기대되고 있던 해외지원마저 하나 둘 끊기는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의 9월 대러 IMF지원금 48억달러의 유보검토 발언에 이어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일부 서방채권단이 러시아의 해외금융자산에 대해 압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관건이 되고 있는 외환정책도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서리는 이날 『중앙은행의 금과 외환보유고에 맞춰 루블화발행을 엄격히 통제하겠다』고 밝혀 고정환율제인 통화위원회제도의 도입을 시사하면서도 『임금지급 등을 위해 우선 루블화 추가 발행을 지지한다』고 밝혀 정확한 진의를 의심케 했다.

세르게이 두비닌 중앙은행총재는 이와 관련, 『루블화 추가발행은 단기처방』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엄격한 루블화 관리가 목표』라고 말했다.

◎국방장관 “유혈충돌” 경고/총리인준투표 7일로 연기

루블화 속락에 이어진 물가급등에 따라 사회불안 심리도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 트베르스코이 거리에 있는 한 식료품점에서는 얼마전 40루블 이하였던 소시지 가격이 118루블로 뛰었고, 7∼9루블에 판매되던 말보로 담배가격은 16루블로 올랐다. 이같은 물가는 연금생활자의 월평균 연금이 300∼500루블인 점을 감안할 때 살인적인 물가이다.

현지 관계자들은 『모스크바 시내 상당수 지역의 생필품 가격이 최근 며칠 사이 30∼40%, 많게는 배 가까이 올랐다』며 『그나마 많은 상점들이 문을 열었어도 물건을 팔지 않거나 아예 문을 닫고 사재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물가고는 옐친 대통령의 현정부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이어지고 있다. 3일 인테르팍스통신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1,500명의 응답자 가운데 67%가 현 경제위기의 책임이 옐친에게 있다고 밝혔으며 응답자의 3분의 2가 옐친의 즉각 사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체르노미르딘 총리서리 인준을 둘러싼 옐친 대통령과 국가두마의 갈등은 국가두마가 옐친의 요청에 따라 4일에 있을 예정이었던 인준투표를 7일로 연기함으로써 일단 진정됐지만 여전히 대결 국면은 지속되고 있다. 체르노미르딘은 3일 국가두마의 자진퇴진 요구를 일축하고 정면돌파의 출사표를 던졌다. 반면 국가두마 위원회는 총리 인준 3차 부결 뒤 옐친의 의회해산 가능성에 대비해 대통령 탄핵동의안을 국가두마에 제출했다. 탄핵동의안이 상정될 경우 옐친의 의회해산권은 탄핵동의안의 심의가 끝날 때까지 유보된다.

한편, 이고르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날 『군의 분위기가 유쾌하지 않다』며 『국내 정치위기로 93년 수백명의 사망자를 낸 의회와 대통령 지지세력간의 유혈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2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는 알렉산드르 레베드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 역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날의 (정치·경제)상황은 1917년 10월 혁명 전야보다 더 심각하다』며 『총리인준이 끝까지 부결되고 옐친 대통령이 국가 두마를 해산한다면 대중적인 소요사태를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장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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