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신화 속의 삼황(三皇)의 하나인 복희(伏羲)와 인류를 창조했다는 여와가 마주 선 화상(畵像)을 보면 복희는 손에 곡척(曲尺)을 가졌고 여와는 손에 콤파스를 들고 있다. 곡척과 콤파스가 천하를 다스리는 지휘봉이라는 말이다.역시 중국 고대전설상의 성군인 우(禹)임금은 「왼쪽에 준승(準繩)을, 오른쪽에 규구(規矩)를 가진 몸가짐이었다」고 한다. 수평을 가늠하는 수준기(水準器)와 직선을 정하는 먹줄, 정원(正圓)을 그리는 걸음쇠(콤파스)와 정방(正方)을 그리는 곡척처럼 모든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반듯했다는 말이다. 이 네가지는 모두 목수가 쓰는 도구로, 「규구 없이는 방원(方圓)을 정하지 못하고 준승 없이는 곡직(曲直)을 바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래서 「규구준승」은 모든 사물을 바로 잡아준다고 해서 행위의 표준, 사물의 준칙, 일상생활에서 지녀야 할 법도의 뜻으로 전의(轉意)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 유클리드의 저서 「기하학원본」은 기하학의 원전(原典)으로서뿐 아니라 합리적 사고의 전범으로서의 가치가 길이 평가되어 온다. 그 유클리드 기하학의 도구가 자와 콤파스다. 그리스인들은 자와 콤파스를 「신의 기계」라 부르며 숭경(崇敬)했다. 고대부터의 기하학의 난문제인 각(角)의 3등분문제나 원적(圓積)문제(주어진 원과 같은 면적의 정사각형 그리기)등은 자와 콤파스만으로 작도한다는 조건이 수학자들을 울려온 것이다.
자와 콤파스, 이것은 규범의 상징이다. 이 중에서도 자는 정사각형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금이 있어서 치수를 잰다. 척도(尺度)가 되어 준다. 척도는 규범의 출발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도 없고 콤파스도 없다. 준승이 없고 척도가 없다. 우리는 실규(失規)·실척(失尺)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령 최근에 불거진 불법 고액과외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과외의 근절이 남북통일만큼이나 온 국민의 숙원이 되어온지 오래다. 웬만한 가정마다 무리한 과외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과외 자체를 놀라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경악하는 것은 그 고액의 액수다. 단 한달반의 족집게과외에 2,000만원을 주었다 하고 1인당 최고 8,000만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도가 너무 지나치다. 도(度)자는 법도 도요 자로 잴 도다. 표준을 잃었고 한도를 잃었다. 어떻게 과외 하나에 수천만원씩이라는 단위가 붙을 수 있다는 말인가. 단위의 과용이요 오용이다. 이것은 정척(正尺)의 치수가 아니다. 척도의 혼란은 가치의 혼란을 가져온다. 모든 가치에 의문이 생긴다. 어느 것이 제값인지 어지러워진다. 올바른 값을 모르면 모든 정가(定價)를 부인하고 싶어진다. 정가가 흔들리면 온 사회가 흔들린다.
불법 고액과외의 충격은 단순히 몇몇 사람의 모리(謀利)나 무모(無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잔뜩 바람이 든 가치들의 한 표출이라는 데에 우려가 있다.
서울대 총장이 불법 고액과외에 연루된 것은 희극이요 비극이다. 최고위의 교육자가 직분의 준승을 잃은 것이 통탄스럽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울대총장도 자식에게 고액과외를 시킬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잃어버린 규구가 한심스럽다. 그러고보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 멍멍해진다. 이 또한 기준의 혼란 때문이다.
비단 불법 고액과외뿐이 아니다.
지금 정치판에서는 정치인들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우루루 몰려가고 있다. 무슨 이념의 차이로 무슨 정견의 변화로 소속 정당을 옮기는 것인지 당당히 밝히는 사람이 없다. 기껏 궁색스런 핑계가 『정국의 안정을 위해서』다. 그 중에는 군사정권이건 문민정부건 새 정권때마다 자신이 주도세력이었던 전 정권을 배신까지 하면서 여당에 빌붙어 온 변절들도 있다. 아무 규준(規準)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예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도 따지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사정 바람이 한창 불고 있다. 죄 있는 곳에 벌 있는 것이 법의 먹줄이다. 형평성 시비가 이는 것도 이상하고 또 표적수사라고 반발하는 것도 우습다. 이 또한 법도가 꼿꼿한 사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미터 원기(原器)가 없다. 표준의 잣대를 잃었다. 그래서 정상(正常)을 모른다. 모든 것이 이치에 안맞는다. 한 손에 자를 들고 한 손에 콤파스를 들고 정사각형과 완전히 둥근 원의 사회를 지향해 나가는 일이 급하다.<논설고문>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