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업종에 대한 5대그룹의 사업구조 조정안이 난산끝에 마침내 골격이 발표됐다. 가시적인 재벌구조 개혁을 서두르려는 정부의 압력에 등을 떼밀린 인상이 없지 않지만 일단 재계가 처음으로 자율적인 조정을 통해 과잉, 중복투자부문을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사업조정의 내용이 당초 공언해왔던 그룹 이(異)업종간의 대규모 사업교환보다는 사업부문간 기업통합에 의한 공동회사 설립이나 컨소시엄 구성에 치우쳐 퇴출이나 사업포기 부담을 회피하려는 미봉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기업이 왜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가. 과감한 경영효율화를 통해 체질과 경쟁력을 보강하지 않고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외부압력에 밀려 억지로 할일이 아니고 스스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그야말로 생존을 건 자구(自救)노력이어야 한다. 글로벌 시대의 경제우위 분야를 확실히 설정하고 그룹의 핵심역량을 집중해서 미래성장 분야를 개척하는 사업구조 개혁의 변신 없이는 기업도, 우리경제도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의 문어발식, 호송선단식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대기업 자신이 더 잘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산업을 주도하는 상위권 재벌들조차 과연 당면한 위기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새로운 여건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 변신할 의지를 가졌는지 의구심이 앞선다. 이번 구조조정 협상과정에서 사업영역 장악을 위한 그룹간의 이해관계 마찰은 과거의 문어발 의식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반도체는 현대와 LG의 경영권을 둘러싼 충돌로 전체 협상의 걸림돌이 되었고 철도차량, 발전설비 등 잠정합의된 부문조차 삐걱거리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변신의 의지가 의심스런 이들 재벌들은 스스로의 생존책을 찾는 구조조정이 마치 나라경제나 국민을 위해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대출금의 출자전환, 이자와 세금감면 등 엄청난 정부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대출금 출자전환 요구만도 20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 지원을 누가 부담하는가. 이자탕감이나 이자수입 감소에 따른 은행수지 보전도 결국 국민세금으로 충당될 것 아닌가.
재계 자율로 중복투자 정리의 물꼬를 일단 튼 것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분명한 변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기업 구조개혁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끊임없는 고강도의 자구노력이 계속될 때 이를 돕는 정부 지원도 명분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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