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정권이 집권 후반기에 가장 자랑스럽게 내걸었던 구호는 「역사바로세우기」였다. 95년 11월 5·18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그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 구호에 따라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내란의 수괴로 낙인찍혀 감옥으로 갔다. 그 뒤에는 96년말 옛 조선총독부건물로 쓰였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구호속에 파괴돼 형체를 감추었다. YS정권이 역사바로세우기 구호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졌는지는 구 신한국당 창당시 정강 앞머리에 이 말을 집어넣은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식민통치와 6·25전쟁, 개발독재에 이은 군부독재등 격변과 질곡으로 일관한 우리 현대사에서 얼룩진 역사를 바로 잡고, 청산하는 일은 과거에나 오늘이나 필요하고 절실한 과제인 게 사실이다. 건국이후 여러 정권이 거쳐갔지만 한번도 제대로 굴곡된 역사를 시정하고 지나가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수치요, 실패이기도 했다.
그러나 YS정권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애초부터 56공세력과의 단절을 통해 정권탄생의 콤플렉스를 씻어보려는 의도에서 출발, 결국 정략적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 지금의 평가이다.
현재 여당이 YS정권의 경제실정을 다루기위한 경제청문회를 추진함에 따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심판대에 오르지않을 수 없게 됐다. 여당은 경제청문회의 필요성에 대해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간 책임소재를 반드시 가리고 넘어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YS정권의 실정과 비리를 규명해 후세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이 역사바로세우기를 하면서 내걸었던 똑같은 논리에 의해 단죄를 받아야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경제청문회를 추진하는 여권은 YS정권을 단죄하기에 앞서 YS의 역사바로세우기의 실패원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들이 YS정권의 전철을 되밟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마음을 가다듬고 심사숙고해봐야 한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국력을 집중해야할 이 시점에 경제청문회가 과연 꼭 필요한 것이냐는 논란은 그 다음 문제다.
YS정권과 비교하면 현정권은 「역사바로세우기」보다는 「역사 껴안기」에 치중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처음부터 공동정권으로 출발한 현정권은 지역감정을 해소하기위한 동서화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또한 여소야대를 허물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과거사는 접어두자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다보니 과거 군부정권하에서 민주인사를 탄압하던 인사, 개인적 비리에 연루돼 사법적 심판을 받았던 인물등 청산되어야할 구시대적 인사들이 득세하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고 있다. 현재 추진되는 개혁정책들이 지지부진한 원인에는 이같은 집권세력 구성원의 수구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정권의 실정과 비리는 반드시 규명되고 잘못이 드러난다면 누구라도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꼭 청문회가 돼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문회는 정당간 정치공세에 파묻혀 본질을 흐릴 가능성이 더 높다. 국회 청문회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은 과거 몇차례 열렸던 각종 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던가. 더구나 지난해말 경제환란(換亂) 부분은 검찰과 감사원에 의해 이미 한차례 철저하게 조사되기도 했는데 얼마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 의문이다. 혹시라도 YS정권을 단죄함으로써 지금의 경제위기로 정부에 쏠리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그만 두는 게 낫다. 그것은 YS 역사바로세우기의 실패를 반복하는 우를 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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