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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무덤/문창재 논설위원(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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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무덤/문창재 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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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산 이효석(可山 李孝石)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 메밀꽃 핀 밤풍경을 이렇게 묘사해 볼품 없는 꽃을 향토정서의 대명사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서는 그런 향토정서를 찾아볼 수 없어 문학연구가들이 불가사의하게 생각한다. 도회적이고 귀족적이고 탐미적인 많은 작품들의 경향이 그런 의문의 바탕이다.■멋쟁이고 엘리트 의식이 강했던 그의 초기작품 세계가 관념적이었던 것은 불우했던 성장과 짧은 인생역정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평창군 봉평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객지생활을 했다. 경성제대를 나와 총독부 경무국에 취직했다가 주위의 질책을 받고는 처가인 함북 경성에 가 교편을 잡았다. 28세때 평양 숭실전문 교수로 옮겼으나 아내를 잃고 만주를 방랑하던 끝에 36세때 뇌막염에 걸려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고향의 정경이 일상 때 마음에 떠오르는 법이 없고, 고향생각이 자별스럽게 마음을 눅여준 적도 드물었다. 그러므로 고향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때때로 서글프게 뼈를 에이는 적이 있었다…> 「영서(嶺西)의 기억」이란 수필에서 그는 고향에 대한 정서를 이렇게 표현했다. 소학교 1학년부터 계모슬하를 떠나 100리 거리의 읍내 학교에 다닌 불우한 천재소년에게 엄마품이 없는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었을 지 모른다.

■그런 팔자 때문인지 그의 유택(幽宅)도 떠돌기만 한다. 사후 그는 부친이 면장을 지낸 평창군 진부면에 묻혔으나 74년 영동고속도로 개설 때 묘역이 저촉돼 인근 장평리로 이장됐다. 이번에는 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에 걸려 또 옮겨가야 한단다. 서울의 유족들은 이 기회에 서울 근교로 이장할 계획을 추진중이어서 고향사람들이 서운해 하고 있다. 이제는 생가마을에 영면할 유택을 잡아 오랜 방랑이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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