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종현(崔鍾賢) SK그룹회장의 「화장유언」은 우리 사회에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동안 호화분묘로 물의를 빚거나 눈총을 받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지도층이나 부유층이라는 점에서 고인의 자세는 재벌에 대한 편견을 씻어주는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고인의 화장이 계기가 돼 「생활개혁실천 범국민협의회」(의장 이세중·李世中 변호사)의 「화장유언남기기 운동」이 호응을 얻을 전망이라고 본보 1일자 15면은 보도하고 있다.우리의 매장풍습은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전통에서 출발한다. 현재 전국에는 1,998만여기의 분묘가 국토면적의 1%를 점유하고 있고 해마다 여의도보다 넓은 땅이 묘지로 바뀌고 있다. 국토의 가용면적이 좁고 인구는 많은 우리나라에서 묘지문제는 발등의 불이지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되면 널찍한 묘역에 그럴 듯한 봉분을 갖춰야 망자에게 사람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 인식의 밑바닥에는 풍수사상에 뿌리를 둔 그릇된 명당의식과 발복(發福)에 대한 욕망도 자리하고 있다.
차제에 종교계가 시민단체와 함께 화장문화 정착에 앞장설 것을 제안하고 싶다. 다기화한 사회일수록 종교만큼 영향력이 큰 단체도 없다. 한국갤럽이 지난 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두 명중 한 명은 신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별로는 개신교 20.3%, 불교 18.3%, 천주교 7.4%, 기타종교 0.9%의 순이었다. 불교는 원래 화장을 장려해온 종교이다. 다비식은 자연에서 태어난 육신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윤회사상의 연장선 위에 있다. 부활이 신앙의 핵심인 기독교 역시 화장이 교리와 배치되지 않는다. 부활은 육체가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영적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문화권인 영국 독일 등의 화장률이 50%가 넘는다는 사실은 부활신앙의 본질을 잘 말해준다.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은 죽으면서 관밖으로 두 손을 내놓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결국 인생은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칭기즈칸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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