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혁신 제대로 안돼 주가하락우리 기업들이 몸집 불리기에 정신이 팔려있을땐 증권거래소 공시가 「증자(增資)」일색이었다. 「감자(減資)」는 기껏 1년에 한두건이었다. 하지만 거품이 빠지면서 이제는 감자가 다반사가 됐다. 지난주만 해도 감자공시가 5건이나 있었다. 감자계획이 알려지면 예외없이 주가가 떨어진다. 27일 감자를 공시한 Y사는 이틀만에 주가가 3분의 2로 떨어졌다. 24일 감자를 발표한 T사도 3일 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투자자들은 감자란 말만 들어도 주식을 내다 파는 「감자공포증」에라도 걸린 듯하다. 과연 감자는 기업에 「극약」일까.
「홍길동씨는 활빈당(주)의 주식 100주를 갖고 있었다. 계산상 활빈당의 자본금가운데 홍씨 몫은 5,000원(액면가)×100주=50만원이지만 시가가 1,000원으로 떨어져 실제가치는 10만원이었다. 활빈당이 10대 1의 감자를 실시하자 홍씨 소유주식은 10주가 돼 홍씨 몫의 자본금이 5만원으로 줄었다. 활빈당은 이처럼 기존주주들의 자본금을 줄이고 그 대신 새 자본을 끌어들여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주주구성을 바꿨다. 감자절차를 위해 매매정지됐던 활빈당주식이 다시 거래될때 시작가격은 증권거래법상 감자율의 역수인 10배를 곱한 1만원으로 결정된다. 홍씨 주식의 시가총액은 1만원×10주=10만원으로 변함이 없다」 이론상 감자는 주주의 재산가치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주주들은 「감자 공포증세」를 보이는 것일까.
감자후 뒤따른 증자의 규모나 증자에 참여한 자본의 성격이 기업 경영혁신에 큰 도움이 돼 영업전망이 확실히 개선될 것으로 판단되면, 투자자들은 시가가 몇배나 비싸진 감자기업의 주식을 기꺼이 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감자에 뒤따른 증자나 경영혁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감자비율도 적절하게 정해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구조조정의 첫단추였던 제일, 서울은행의 감자가 사실상 실패로 드러났다. 또 감자가 마치 기존주주를 벌주기 위한 것처럼 인식된 점도 감자의 이미지를 손상시켜 감자이야기만 나오면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다.
감자직후에는 시세와의 차이때문에 주가하락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감자의 효과가 기업의 영업에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주가의 향방이 달라지는게 당연하다. 「감자=투자자 손실」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일전에 금융감독위원회가 「워크 아웃」이란 용어를 「기업개선작업」으로 고쳤다. 감자도 사실은 「자본개선작업」인 셈이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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