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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전쟁/문창재 논설위원(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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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전쟁/문창재 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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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중 등산을 갔다가 목적지에 도착해 사과를 깎아 먹었다.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자 마자 어디선가 벌 몇마리가 날아와 사과의 단물을 빨기 시작했다. 쏘일까봐 쫓아도 소용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수가 늘어나 얼른 먹어버리고 껍질까지 치웠더니 벌들은 과도에 몰려들어 칼날에 묻은 과즙을 빨아대는 것이었다. 주위에는 들꽃도 많이 피어있는데 벌들이 왜 이리 난리인가 싶었다. 과즙보다 꿀이 훨씬 달텐데….■다음날 저녁 TV 뉴스에서 「벌들의 전쟁」이란 보도를 보고 의문이 풀렸다. 꿀을 빼앗으려고 토종꿀 벌통에 침입하는 말벌 두 마리를 물리치기 위해 일벌들이 떼지어 저항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몸집이 열배쯤 큰 말벌을 당하지 못하게 되자 수백마리가 달려들어 주먹만한 덩어리를 이루어 처절히 싸웠다. 2시간이 넘는 싸움 끝에 말벌을 물리쳤지만 피해는 너무 참담했다. 수십마리의 일벌이 목이 잘려 나뒹굴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올해는 야생화의 생육 부진으로 꿀이 크게 부족해 벌들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 한다. 장마가 너무 길어 일조량이 부족했고 기온도 낮아 들꽃이 많이 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생태계에는 약육강식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한 자가 자기 몫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자연의 이치다. 부족한 것은 꿀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오랜 장마 끝에 큰 물난리까지 겹쳐 올 농사는 평년작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곡식 야채 양념 과일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물이 다 그렇다 한다. 싼 값에 많은 먹거리를 제공하던 중국도 양쯔강 유역과 동북지방 대홍수로 농사를 망쳤다. 세계 곡물시장을 지배하는 미국도 엘니뇨 홍역을 앓았고, 러시아경제가 빈사상태에 빠졌으니 지구촌에 식량 대공황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벌들의 전쟁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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