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의 통합은 정치권의 불안정한 구도가 정리정돈의 단계로 접어드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여권은 그동안 개혁과 경제 구조조정 등의 벅찬 작업을 추진하면서도 원내 소수세력이라는 한계를 겪어왔다. 그러나 이제 여권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합쳐서 원내 과반의석을 불과 5석 남겨두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당대회이후 이탈의원을 추가, 여대야소(與大野小)의 원내구조를 확보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사실 여권의 원내 안정세력 확보는 타협과 양보의 정치기술을 갖지 못한 우리의 정치풍토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절대적인 과제를 눈앞에 놓고도 여야는 이기적인 고집과 파행대립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여소야대라는 불균형이 있었다. 여권은 야대를 상대로 설득의 정치를 펴기에 역부족이고, 야당은 큰 몸집에 걸맞은 합리적 견제의 역량을 갖지 못했다. 정치권이 능률적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통합을 여권의 세력확장이라는 정파적 이해의 측면에서만 볼 필요가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야당측은 양당의 통합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스스로도 기존의 구도로는 내부의 취약점이나 정치의 불안정이 해소될 수 없다는 점을 익히 알 것이다.
국민신당은 대선 패배이후 정치역할과 존재가 미미한 주변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통합에 정계개편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엄밀하게 말하면 현역의원의 무더기 영입이자 여당 울타리로의 투항이라고 할 것이다. 과거 우리 정당사의 무수한 선례처럼 이번 통합 역시 이념이나 노선의 문제 등 무게있는 정치철학이 담긴 변동은 아니며, 정치인의 편의적 당적이동이나 선거용 포말정당의 실체를 다시 보는 느낌이다. 여권의 정치권 사정의지가 어느때 보다 강도 높게 표명된 직후 통합이 이루어졌다는 점 또한 과거의 패턴과 다르지 않다. 여권이 정계개편을 강조할 때마다 사정 위협이 동원돼 왔다는 점을 지적하게 된다.
어쨌거나 여권은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입지가 마련됐다. 또한 지역주의를 허물고 국민정당을 지향하는 명분있는 정계개편의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다. 여권은 이제 강화된 정국주도력으로 정치개혁을 차질 없이 수행해야 한다. 차제에 대선이후 혼돈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정치권이 각자의 색깔과 이념으로 자신을 정리하는 작업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난국에 대처하는 정치권으로서 우선 할 일이라는 것이 지난 6개월을 낭비한 정치실종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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