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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에 묻는다/柳時敏 시사평론가(한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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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에 묻는다/柳時敏 시사평론가(한국시론)

입력
1998.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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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제2의 건국 하려면 민주화 몸바친 모든 희생자 보상법률 만들 용의 없는지…때늦은 공부를 위해 독일로 건너간 지 두달 후, 나는 이른바 「문민정부」의 탄생을 보았다. 바다를 건너 온 첫 소문은 「상도동에는 개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상도동 사람들」은 모두 다 벼슬을 받아 높은 데로 가고, 개만 개라서 감투를 못쓰고 남았다는 이야기다.

김영삼씨는 문민정부가 6월민주항쟁의 계승자라고 자랑하면서도, 그 주역인 재야세력에게는 철저하게 찬밥을 먹였다. 「한 줌도 안되는 상도동 사람들」이 무능과 부패의 바다에서 익사한 것은 스스로 잠재적 우군과 선을 그음으로써 초래한 재앙인지도 모른다.

나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두달이 지나서 돌아왔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수십년을 핍박받았던 「동교동 사람들」이 높은 데로 간 것은 당연하다. 지조를 지키면서 실력을 기른 재야인사들이 청와대로 집권당으로 내각과 정부산하조직으로 진출한 것도 적어도 한 때 한솥밥을 먹었던 나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국민의 정부」에 선뜻 정이 가지 않는다. 뜻은 좋은 것 같은데 그 방법과 자세가 미덥지 않은 탓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터이니, 오늘은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광주보상법)」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97년 12월 개정된 광주보상법은 광주 현지 희생자외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자 등 다른 지역에서 고초를 겪은 관련자들도 보상을 받는 길을 열었다. 좋은 일이다. 민주화는 독재자와 그 하수인을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준다. 「치안」이 범죄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이로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성격의 공공재(公共財)는 누군가 그것을 공급하면 모두가 무임승차를 할 수있기 때문에, 아무도 비용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안은 국가가 제공하며 그 비용은 강제징수한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런데 지금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국민가운데 누가 민주화를 위해서 세금을 냈는가. 아무도 없다. 민주화운동의 비용은 스스로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다 냈다. 3분동안 「독재타도」를 외친 대가로 3년 징역을 살고,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하다가 허리가 부러지고, 장기간의 과로로 생명을 잃고, 수사기관의 취조실에서 정신병을 얻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제나라 군대의 총칼에 수백명이 죽음을 당했고 수천명이 불구가 되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수배와 구속을 당한 이들의 가족이 겪은 정신적 물질적 고통도 이루 말할 수없이 컸다. 이 모든 고통이 지금 우리가 반쪽짜리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들어간 비용이다.

광주보상법은 민주화운동의 비용을 뒤늦게나마 세금으로 정산하는 정의로운 법률이다. 이렇게 해 주어야 후일 혹시라도 독재자의 발호가 있을 경우 더 많은 국민들이 용기를 가지고 일어날 수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칠 경우 「국민의 정부」는 스스로 지역정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79년 반유신 부마항쟁은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던가. 80년대 내내 광주진상 규명과 독재타도를 위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싸웠던 그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은 「국민의 정부」탄생과 무관한가. 목숨을 빼앗기고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잃은 이들의 부모형제와 자녀들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기는 광주피해자의 경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국민의 정부」에 묻는다. 민주화에 바친 모든 희생을 보상하는 법률을 만들수 없는가. 그것이 어려우면 재단을 하나 만들어 너무나 고달픈 삶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투사」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이라도 주면 안되는가. 그들의 희생이 수재민과 실업자들의 불행과 고통만큼도 가치없는 것인가. 이런 사람들의 한과 눈물과 한숨을 외면하고서, 당신들은 도대체 어떤 「제2의 건국」을 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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