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분규가 노사합의로 타결이 됐는데도 후유증이 만만찮다. 그 이유는 노사협상 과정에서 국민회의 중재팀이 정치적 논리로 깊숙이 개입하여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얼버무려 놓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법이 정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정리해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더라도 노조의 저항이 강하면 회사는 물론 정부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좋지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다.■예상대로 재계는 불만의 소리를 내고, 외국언론은 얼씨구나 좋다고 한국의 기업구조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협상팀을 보냈던 국민회의 내부에서도 뒤늦게 찬반논란이 나오고, 노동부 장관도 정부의 개입자제를 언급했다. 더욱 알쏭달쏭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마침 취임6개월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이 너무 개입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자신은 정치권의 개입을 전혀 몰랐다는 것인지, 결과적으로 유감이라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기업구조조정은 한국경제 회생의 전제조건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IMF도 그렇게 말해왔고, 따라서 그것은 국민적 합의가 됐다. 정리해고는 구조조정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기에 IMF사태가 오기 전부터 거의 2년간 국회파행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정리해고 없이는 기업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기업이 죽으면 더 큰 노동자의 고통이 따른다는 믿음에서 김대통령도 정리해고의 감내를 강조해왔다. 특히 김대통령과 노동계의 인연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 힘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현대차 사태 해결과정에서 취한 김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이 노동자의 손을 들어달라거나 재계의 편을 들어달라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들은 대통령이 침몰하는 한국경제를 구출해내기 위해 정책의 원칙과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법의 지배를 확립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모호한 메시지가 혼돈을 부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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