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광복절에 정부는 「제2의 건국」을 기치로 내걸고 국정의 총체적인 개혁을 선언했다. 난국을 타개해야 할 새 정부가 출범 6개월동안 골목싸움같은 정치싸움만 하고 인사에서 난맥상을 보이며 허송세월하자 새 정부의 개혁을 기대하던 국민들은 점차 얼굴을 돌렸고 지지도도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 거의 김빠진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제2의 건국」을 들고 나온 것이다. 시큰둥한 사람들도 적지않지만 개혁을 하겠다고 하는 판에 초장부터 이를 비난하고 나설 이유는 없다고 본다.「제2의 건국」이란 말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1948년 7월17일 헌법의 공포로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이 건국됐고 그 이후 한번도 나라가 망하거나 주권을 상실한 적이 없기 때문에 법적인 면에서는 「제2의 건국」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의 실패를 되돌아보면 「제2의 건국」은 역사를 다시 세우는 과업을 일컫는 상징개념으로 충분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의 기본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정치적 레토릭이다. 따라서 「제2의 건국」이라는 말만 꼬집어 역대 정부와의 연속성이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시비하는 것은 옳지않다.
중요한 것은 「제2의 건국」이랄만한 국가와 사회의 총체적인 개혁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제2의 건국」선언이후 대다수 사람들은 「제2의 건국」이라는 말 그 자체보다 이런 개혁을 주도할 사람과 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제2의 건국」과 같은 개혁의 중심개념이 말잔치로 끝날 때에는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허위의식으로 전락하지만 이것이 실천개념으로 될 때에는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래서 현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정치제도의 총체적인 개혁, 부정부패의 일소와 방지, 교육개혁, 고용시장의 안정, 국가기능의 혁신, 사회기강의 확립 등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확고히 하고 국가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일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러나 「제2의 건국」을 선언한 직후 내놓은 것이 겨우 고철화한 새마을운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제2의 건국운동」구상임을 보면 개혁 주도세력과 관련하여 걱정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새마을운동단체를 중심으로 시민단체를 모아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은 근대화 패러다임에서 채택된 국민동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발상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우리가 홍위병이냐」며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정권은 짧고 시민운동은 길다는 것 하나만 알아도 이런 발상은 하지 않는다.
진정 시민단체와 손잡고 개혁을 추진하려면 먼저 관변단체부터 모두 정리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법규들도 폐지하고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조치는 하지않은 채 정부나 국회에 여전히 유신시대와 5·6공시대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게 만들어놓고 국민에게 개혁에 동참하라 한다면 이는 넌센스다. 제 정신 가진 사람치고 이런 판에 얼씨구 좋다 하며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혁은 사람이 한다. 그래서 개혁의 성패는 누가 개혁을 주도하느냐에 달려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진정으로 개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유신시대의 인물과 3김 정치판의 사람들이 꽉 들어찬 장면은 진정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개혁 대상으로 된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는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는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 현 단계에서 취할 조치는 낡은 인물들을 과감히 청산하고 각 부문에 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인물과 새로운 세력을 배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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