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 시인이여 눈을 뜨자”/北 대표적 시 15편 게재 눈길원고지 12장 남짓한 시지(詩誌)의 창간사가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땅의 시인이나 시잡지를 내는 사람들이 스스로 옷깃을 여며 참다운 시의 위의와 시인의 품격을 회복하는 일에 너나할 것없이 살신성인의 자세로 앞장서야 할 때가 도래하였음을 통감하는 바…』. 시 전문 계간지 「시안(詩眼)」을 이번 가을호로 창간한 오탁번(55) 고려대 교수는 마치 독립선언서 같이 비장한 어조로 「시의 위의(威儀)와 시인의 품격 회복」을 호소하고 있다. 오교수는 『유명인의 낙관이 있으면 작품을 보지도 않고 후한 점수를 주고, 작가가 현실적으로 힘이 있다는 판단이 들면 곡필로써 아부하는』 현 문화예술계는 그야말로 「도떼기 시장」이라고 비판하며 새 시지 창간의 의도를 밝혔다.
「시안」은 기존 시 전문지들과는 차별되는 특색있는 내용이 눈에 띈다. 먼저 현재 북한에서 활약중인 시인들의 대표적 서정시 15편을 게재했다. 이 작품들은 북한 조선작가동맹의 기관지인 「조선문학」에 실린 90년대 작품들. 오교수는 『이념의 허위와 자본의 허상에 맹종한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일을 소홀히 하는 모든 문학행위는 통일조국의 현대시사에 포함될 수 없다』며 남북한 시인들의 민족의식 회복을 호소하는 의미에서 이 시들을 게재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북한시인들에게 작품당 30달러의 원고료를 반드시 지급하기로 하고, 당국을 통해 그 송금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서정주에서 권혁웅에 이르는 시인 30명의 신작시와 대표시 1편씩을 게재한 것도 돋보이는 특집이고, 조지훈시인부터 시작하는 「탐방시인의 집」도 시인들의 생생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갑다.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 소설 평론이 모두 당선되며 화려하게 등단, 4권의 시집과 5권의 소설집을 낸 오교수는 오래 전부터 시 전문지 발행을 꿈꿔왔다. 매호 2,000여만원씩 드는 제작비는 『퇴직금 당겨 쓴다』는 생각으로 우선 자신이 모두 충당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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