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지금 몇 시인가. 파국으로 치닫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파업이 24일 새벽 극적으로 타결됐다. 무척 반가운 일이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현대자동차 파업이 발생했을 때, 국내외의 많은 관계자들은 노사가 협상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 정부당국은 어떻게 대응할지 가슴 졸이며 지켜 봤다. 한국경제에서 현대그룹과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비중이려니와 「국민의 정부」의 노사관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첫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사정 모두 과거와 다른, 전향적 자세로 문제해결에 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이하였다. 보다 진화한 모습의 협상자세를 찾아 보기 어려웠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노사개혁취지는 어디로 가고 말았는지…. 최근 미국경제를 떠들썩하게 했던 GM의 파업과 너무 대조적이다. 현대와 GM은 한국과 미국의 최대 자동차메이커이자 경쟁업체다. 그러나 파업을 강행한 노조, 파업에 대처하는 사용자, 파업해결을 중재하는 정부당국의 자세는 천양지차를 보였다.
현대파업과 GM파업의 본질적 차이점은 준법 여부다. GM파업은 모든 절차가 법치주의의 원칙에 의해 「법대로」 진행됐다. 노조 사용자 모두 법대로 행동했고 정부당국은 게임의 심판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게 정도(正道)다. 진화한 노사관행이다. 우리 정부당국에 묻고 싶다. 현대자동차 파업과 관련,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하고 노조가 파업을 함에 있어 법을 제대로 지켰는지 따져 봤는가. 또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발견됐다면 엄정하게 조치했는가.
현대파업은 벌써 국내외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다. 현대파업의 타결방식이 관행화할 경우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외국투자자들의 반응은 더 민감하다. 당장 돈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파업과정을 보고, 한국경제 전체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보았음인지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현대파업을 계기로 뉴욕월가에서 유통되는 한국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격이 상당히 하락했다. 외평채 가격의 하락은 외채금리의 상승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총외채는 이미 1,500억달러를 넘어섰다. 가산금리가 1%포인트만 올랐더라도 그 부담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외국투자자들은 왜 현대자동차 파업을 그토록 주시했나. 업종이 국가기간산업인 자동차산업인데다 현대그룹의 위상과 울산이 갖는 경제적 상징성을 고려한 때문일 것이다. 울산광역시는 현대그룹과 함께 성장했다. 울산에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정공 등 현대그룹 주력 계열회사가 집결되어 있다. 울산의 시세(市勢)확장과정은 바로 현대그룹의 성장사, 곧 한국재벌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 한다. 현대그룹이 없는 울산은 상상할 수 없다. 「현대시(現代市)」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전 울산은 허허벌판이었다. 거대한 산업도시로 변한 울산은 현대판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전형이다. 「압축성장」으로 표현되는 한국 현대경제사의 현장이다.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여느 도시가 아니다. 울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현대그룹은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이자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외국투자자들의 눈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파업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파업으로 비춰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울산의 시계」는 곧 「한국경제의 시계」다. 울산의 시계바늘은 지금 바르게 가고 있는가, 아니면 거꾸로 가고 있는가. 뉴욕 월가의 투자자들은 울산의 시계바늘을 보고 「국민의 정부」의 개혁을 평가할 것이다.
세계의 시계바늘은 21세기를 향해 돌아가고 있다. 새로운 천년(뉴 밀레니엄)이 5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시계바늘이 뒷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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