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生殺’ 추석전후 2차례 밀회/97년 8월 김선홍,임창렬 만난후 ‘사표제출’ 오락가락/연휴때 관계자들 계열사명단 줄그어가며 처리 결정/“날 죽이려한다” 金회장 인터뷰에 정부기아 더 악화97년 9월14∼17일. 여느해처럼 추석연휴는 다가왔다. 경제는 수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었다. 4일 연휴가 주는 넉넉함이 사람들을 느긋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아사태 당사자들은 쉴 수가 없었다. 부도유예기간만료가 어느덧 보름남짓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임창렬(林昌烈) 통상산업부장관 류시열(柳時烈) 제일은행장 이호근(李好根) 제일은행이사 김영태(金英泰) 산업은행총재 박제혁(朴齊赫) 기아자동차사장 송병남(宋炳南) 기아그룹경영혁신단사장이 연휴기간중 시내 모처에서 무릎을 맞댔다.
이제는 결판을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의 증언. 『기아그룹 소속사 명단을 놓고 줄을 그어가며 처리방안을 하나 하나씩 결정했습니다』 「기아자동차는 98년말까지 채무를 유예시킨다. 기아특수강은 대우 현대가 공동경영한다. 아시아자동차는 대우가 인수한다. 김선홍(金善弘) 회장 등 경영진의 사표와 노조의 동의서를 채권단이 징구한다」 「대타협」은 이렇게 이뤄져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했다.
그러나 연휴가 끝난지 5일뒤인 22일 기아그룹은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기아인터트레이드 등 4개 주력계열사에 대해 전격적으로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 화의신청서를 제출했다. 박제혁사장은 이날 아침 제일은행으로 류시열행장을 찾아가 화의신청사실을 「통보」했다. 류행장은 박사장 일행을 돌려보낸뒤 기자에게 『화의동의 여부는 기아측이 제시한 화의조건을 보고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들도 법정관리보다는 화의가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불과 하루뒤 채권은행단의 판단은 기아사태 해결의 「독립변수」가 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김인호(金仁浩) 청와대 경제수석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화의제도는 기업을 살리는데 많은 제약이 있는 제도』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음날 홍콩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총회에 참석하고 있던 강경식(姜慶植) 부총리는 귀국직전 『법정관리는 채권단에 추가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반면, 화의시에는 지원자금이 「공익채권」으로 분류되지 않아 기업을 회생시키기 힘들다』고 김수석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당초 24일 열리기로 돼 있던 채권은행단 운영위원회는 26일로 연기됐다.
귀국 다음날인 25일 강부총리는 임창렬 장관 류시열 행장 김영태 총재와 회의를 가졌다. 26일 은행운영위원회와 은행장회의가 잇따라 열린 이후 채권금융기관 관계자들은 일제히 「공익채권」논리로 법정관리불가피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 채권은행 임원은 당시를 회고하며 『처음에는 화의에 동의해준다는 분위기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 임원은 『채권단 회의 며칠전 화의를 담당하는 서울민사지법 50부에 문의를 해 봤습니다. 채권단의 동의만 있으면 화의 이후 지원금도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회수가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결국 애초부터 채권은행단이 기아그룹에 대한 입장을 결정할 상황이 아니었음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제일은행이 주거래은행으로 있는 이상 독립적 판단은 무리였다.
추석 이전에도 대타협의 기회는 있었다. 8월13일 임장관과 김회장은 서상목(徐相穆) 신한국당의원의 주선으로 회동을 가졌다. 그리고 이날 김회장은 돌아와 기아그룹 경영진들에게 사표제출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박제혁 사장을 비롯한 정통기아맨 출신 경영진들의 반대는 완강했다. 『조건부 사퇴라지만 사표를 일단 내면 언제라도 정부가 마음대로 김회장을 몰아내고 삼성에 기아를 넘기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사표제출은 없던 일이 됐고 김회장은 『임장관을 만난 일이 없다』며 16일 중국출장을 핑계로 출국해버렸다. 훗날 기아그룹의 한 관계자는 『당초 임장관과 김회장은 만남 자체를 비밀로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장관이 김회장을 만났다고 밝히는 바람에 김회장만 거짓말장이가 됐고 김회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했습니다』고 말했다. 송병남 사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안 만난 것으로 하는게 옳다』고 애매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김회장은 이때 사표제출약속을 번복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정부쪽에 「못믿을 사람」으로 찍히게 됐다.
정부와 김회장간의 골이 깊어진 사건은 또 하나 있었다.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간지 사흘뒤인 18일 「나와 회사를 죽이려고 정부와 은행들이 작정했다」는 내용의 김회장 인터뷰기사가 중앙일보에 보도됐다. 전날 저녁 서울시내에 배포된 가판신문에 이같은 내용이 실렸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김회장은 『나는 절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정부, 채권단과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거냐 뭐냐』고 화를 냈다. 기아측의 항의로 제목은 바뀌었지만 내용은 그대로인채 신문은 다음날 서울시내에 배달됐다. 정부나 채권단 인사들이 분개한 것은 불문가지였다.
공교롭게도 이 신문이 삼성그룹 계열이라는데 기아그룹 직원들은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삼성변수」는 기아사태를 일관되게 꼬이게 만든 요인이었다. 위 아래 할 것없이 대부분의 기아그룹 직원들은 기아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삼성과 정부의 합작음모라는 시각을 일관되게 갖고 있었다. 한 기아자동차 임원의 말. 『부도유예에 들어가고 자구계획을 제출한지 얼마되지 않아 청와대 비서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구계획에는 동업종 기업에 시설을 매각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죠. 동업종 기업이 어디겠습니까』 정부삼성음모론의 설득력 여부를 떠나 이같은 시각은 기아그룹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극도로 좁게 만들었다. 경제논리에 앞서 정치논리에서 사태의 원인을 찾으려는 태도에서는 합리적인 타협점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회장을 비롯한 기아그룹 경영진이 그토록 줄기차게 「의혹」을 제기했던 것은 본인들이 정경유착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신행(李信行) 기산부회장을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내보낸 것이나 금융권에 있던 K씨를 전격적으로 계열사 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그같은 사례의 하나다.
『누군가 우리나라의 현대정치사나 경제사를 새로 쓴다면 바로 이런 정경유착이 빚은 사건을 제외하고는 기록할 것이 마땅치 않을 것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김회장이 자서전 「이대로 멈출수는 없다」에서 한보사태를 가리켜 한 말이다. 그러나 김회장이나 기아그룹 역시 정경유착의 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기아측이 주장하는대로 강부총리로 대표되는 정부측이 삼성편들기에 나섰는지, 소신에 따라 밀어부쳤는지는 앞으로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부산발전시스템」이라는 조직을 구성, 삼성자동차의 부산유치에 앞장섰던 강부총리가 정부의 대표선수로서 기아사태 처리에 나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10월22일 줄다리기는 마침내 끝났다. 정부는 기아자동차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회장도 29일 사표를 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홍콩 페레그린증권이 「Get out of Korea now!(지금 즉시 한국을 떠나라)」라는 보고서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김준형 기자>김준형>
◎‘그때 그사람들’ 지금은/강경식·김선홍… ‘철창신세’/이신행 부회장 ‘집행대기’/류시열 행장은 ‘현직유지’
기아사태는 한국경제를 「환란」으로 끌고 간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97년 7월부터 10월까지 밀고 당기는 「전쟁」을 벌였던 기아사태의 주역들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 한승준 기아자동차 부회장, 이기호 기획조정실 사장, 박제혁 중앙기술연구소장은 모두 영어의 몸이 돼 있다.
현역의원인 이신행기산 부회장은 국회가 열리고 있어 검찰이 사법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측 인사 가운데 강부총리와 김수석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고 있지만 임창렬 당시 통상산업부 장관은 국민회의 소속으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돼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당시 기아그룹 주요 임원 가운데는 이종대 기아경제연구소 사장(현 기획총괄 사장)과 송병남 기아정보시스템 사장(현 기아자동차 사장)만 살아 남았다.
두사람은 기아사태 과정에서 김회장에게 용퇴를 건의하는 등 객관적인 상황판단으로 직원들의 신망을 얻었다. 이들은 각각 기자와 공무원출신으로 외부영입케이스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 김회장을 비롯, 박사장 한부회장 이사장 등 구속된 인물들은 모두 평생을 기아그룹에 몸담아온 정통 기아그룹맨들로서 「삼성음모론」을 펴며 정부와 채권단에 강경하게 맞섰다.
채권은행단의 류시열 제일은행장은 여전히 행장으로서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이호근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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