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휴대폰 든 곡예 운전까지…/1,000만대 보급에 걸맞게 새로운 예절문화를 만들자휴대폰 공해가 심각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휴대폰 소음. 지하철과 버스안에서는 물론 정숙을 지켜야 할 공연장이나 강의실, 도서관, 회의장, 예배당, 예식장 등에서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긴급한 일이 없는데도 휴대폰을 켜놓아야 안심이 되고 어쩌다 고장이라도 나면 안절부절 못하는 「중독증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한손엔 핸들을, 다른 한손엔 휴대폰을 잡고 곡예운전을 하는 운전자도 갈수록 늘어나 이동전화가 단순한 소음공해 차원을 넘어서 「교통사고」 유발범으로 둔갑하고 있는 실정이다.
21일 오전 10시 P대학으로 가는 시내버스안. 방학중에도 버스를 꽉 메운 학생들 가운데 십여명이 학교가 가까워지자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나 이제 간다』『동상 앞에서 기다려』『도서관에 내 자리좀 잡아놔』 등등. 전화 내용의 90%이상이 굳이 전화를 걸지 않아도 될 잡담 수준이다.
이 대학 Y교수(38·정치학)는 『날마다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도대체 비싼 통화료 들여 공공장소에서 무례하게 큰 소리로 떠들 만큼 중요한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대학생의 상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라고 개탄했다. Y교수는 『강의중에도 수시로 휴대폰 신호음이 울려대고, 일부 학생들은 전화를 받기위해 아예 강의실을 빠져나갈 정도』라고 말했다.
휴대폰 보급대수는 이미 1,000만대를 넘어섰다. 상용화 15년만에 가구당 1대꼴로 보급된 셈이다. 1인 1휴대폰 시대도 머지않았다.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휴대폰 사용의 상식과 예절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이다. 첨단 문명만 도입했을뿐 거기에 걸맞는 문화는 아직 인식 조차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운전중 휴대폰 사용. 앞서가던 차가 비틀거리거나 좌·우회전을 하면서 꾸물대면 영락없이 운전자가 통화중이다. 전화를 걸기위해 뒤차는 아랑곳 없이 아예 차를 멈추는 운전자도 적지않다. 도심에서 이같은 운전중 통화는 교통체증의 주범으로 까지 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시내운행이 많은 자가용이나 택시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 등에서도 휴대폰 사용이 늘어나 대형사고의 우려를 낳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96년 7∼12월중 휴대폰 사용에 의한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전체 교통사고의 약 0.28%인 1,140건으로 이중 사망사고는 9건에 달했다. 휴대폰 보유가 1∼2년 사이에 급격히 는 만큼 사고도 엄청나게 증가했을 것으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
정숙을 요하는 공공장소에서 멋대로 울리는 휴대폰도 신종 스트레스이자 「문화 후진국」임을 입증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음악회장에서 느닷없이 울리는 휴대폰은 무대와 객석의 연주호흡과 감상리듬을 망가뜨리고 음악회장 분위기를 흐트러놓기 일쑤다. 피아니스트 K씨는 『최근 3개월 사이에 10여차례 음악회에 출연하거나 관람을 했는데 한번도 휴대폰 신호음을 듣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며 『서울 예술의전당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세계적 지휘자 주빈메타가 지휘하는 교향악단의 하프협연중 갑자기 휴대폰 신호음이 가냘픈 하프음을 압도하자 당황한 여자 청중이 휴대폰이 든 가방지퍼를 열지 못해 허둥대는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공연2부 이재석과장은 『매공연마다 안내방송을 하지만 간혹 공연도중 휴대폰이 울린다』며 『음악애호가 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청중」들이 대거 참석하는 초대공연에서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굳이 정숙해야할 장소가 아니더라도 무절제한 휴대폰 사용은 이미 사회적 공해가 되어 버렸다. 회사원 J씨(33)는 『출·퇴근길 복잡한 지하철에서 자기집 안방인양 큰소리로 통화하고 심지어 어떤 자료까지 꺼내어 불러주는 모습은 꼴불견』이라며 『어쩔 수 없이 온갖 시덥잖은 대화내용까지 들어야 하니 짜증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H씨(46·상업)는 『상가집에 갔는데 한 문상객의 휴대폰에서 신호음으로 흥겨운 민요가 나와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제 보급대수 1,000만대를 자랑하기에 앞서 휴대폰은 꼭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게 써야한다는 기본 예절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우선 휴대폰 사용자 개개인이 상식적인 판단을 기초로 「때와 장소를 가려서」 통화를 해야 한다. 특히 운전중 통화처럼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휴대폰 사용은 철저히 자제해야 한다. 더구나 경제난 속의 과잉통화는 과소비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휴대폰 제조 및 서비스업체에서 가입신청을 받을 때 휴대폰으로 인한 교통 사고 등의 위험성을 알리고 공공장소 사용자제를 촉구하는 교육이나 캠페인을 실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로교통안전협회 산하 교통과학연구원 김만배박사는 『일본에서는 경찰과 휴대전화 사업자가 제휴, 운전자에게 홍보·계몽활동을 하고 있다』며 『휴대폰 사업자들이 이익의 일부를 휴대폰 에티켓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박사는 또 미래 정보통신시대에 대비, 도로의 가장자리에 안전지대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곧 도로가 일터가 되는 시대, 도로에서 전화를 받거나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안전지대에 차를 세우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운전중의 휴대폰 사용을 단속하는 방안도 하루빨리 검토해야 하며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지역을 정하고 금연표지판 처럼 이를 알리는 표시제를 도입하는 등 각종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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