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 오로지 권력쟁탈과 파벌싸움으로 날을 새던 한줌의 썩은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 철종 고종으로 이어지는 이조말엽―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어지는 그 암흑의 세기말 50여년은 수천년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시기였다. 대륙이 혁명에 휘말리고 제국(帝國)이 몰락하면서 세계질서의 판도와 틀이 새로 짜여지던 그 격동의 시기에 우리나라의 정치가들과 지도층들은 쇄국의 문을 닫아건채 오로지 정권쟁탈과 파벌싸움에만 몰두했다. 일본이 명치유신을 단행하고 개방을 받아들여 나라의 근대화를 이룩했던 그 시기에 우리는 썩은 정치로 나라의 명맥을 끊었다.그때 죽었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지 50년신생후진국 처럼 우리도 「건국 50년」을 기념하게 됐다. 그 건국 50년의 감회가 특별한 것은 100년만에 다시 맞는 또 한번의 세기말이 지난 세기말 처럼 국난으로 우리앞에 닥쳐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 세기말과 지금 세기말이 흡사하다고 말들을 한다. 19세기말의 비극도 개방을 거부하는 완고한 쇄국정책과 부패 무능한 정치때문이었고,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20세기말의 비극도 개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어리석음과 부패 무능한 정치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그때의 정치도 썩었고 지금의 정치도 썩었다. 그때의 정치인들도 무능했고 지금의 정치인들도 무능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가장 큰 사명은 파벌싸움이다. 남인 서인 노론 소론으로 갈라져 싸우는 것이나 TK PK MK 하며 편을 가르는 것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반동강이 난 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동서를 다시 영남 강원과 호남 충청으로 가르고, 호남 영남을 또다시 남도와 북도로 가르고 있으니 20세기말의 파벌싸움이 19세기말의 당파싸움 보다 못한게 없다. 피땀으로 이루어놓은 30년 압축성장의 공든탑을 하루아침에 거덜낸 정치의 무능함도 그때와 같다.
IMF체제가 요구하는 개방은 19세기말 쇄국의 빗장을 부수면서 들이닥쳤던 외세 보다 더 가혹한 것일 수 있다. 국가 부도만 문제가 아니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산업기반이 붕괴되고, 금융체계가 무너지고, 경제운용 체제가 와해되고 있다. 국망(國亡)의 치욕을 겪었던 19세기말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극한적 상황이다. 이런 난국에 나라를 이끌어야 할 정치가 썩고 병들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19세기말을 연상하면서 20세기말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람이 달라지고 나라가 달라지는 근본적인 개혁이 없으면 대망의 신세기라는 21세기초가 100년 전 처럼 절망의 신세기 초가 될 수도 있다. 제2의 건국을 말하는 것은 새로 나라를 세우는 것 처럼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인 개혁을 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이 땅에서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개혁을 진짜 한번 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혁을 하자면 개혁을 하는 주체가 먼저 개혁이 돼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인들과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층들이 먼저 개혁을 하지않고 국민들만 개혁을 하라고 한다면 그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수없이 시도됐던 과거의 개혁이 다 실패했던 것도 나는 가만 있고 너만 개혁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앞둔 또 한번의 세기말제2의 건국을 다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원망과 한탄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19세기말의 우리 선조들처럼 우리 스스로가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않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와 함께, 특히 정치인들이 뭔가 크게 깨닫고 각성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