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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한국의 파워포스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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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한국의 파워포스트:8)

입력
1998.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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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후 ‘정치군인’ 집권자에 “충성”/병력 동원 거부 이종찬씨 “육군정신” 존경/5·16쿠데타 계기 집권자 친위대化/12·12이후 더욱 노골적 ‘정치화’ 현상/문민들어 장관­합참의장­총장 順 위상찾아93년 3월8일 아침 7시30분. 대통령과의 첫 독대로 잔뜩 긴장해있는 권영해(權寧海) 국방장관에게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짧지만 단호한 어조로 한마디를 던졌다.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바꿔야겠어요』 길게는 5·16군사쿠데타이후, 짧게는 80년 신군부이후 정치군인 중심의 군부골격을 뿌리채 뒤흔든 「문민쿠데타」의 서막이었다.

이날 곧바로 김진영(金振永) 육참총장과 서완수(徐完秀) 기무사령관이 군복을 벗은 것을 비롯, 김영삼정부 출범 1년동안 96명의 별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혁명적인 인사가 뒤따랐다. 육군의 최고지휘관을 넘어 수십년간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실세중의 실세로 인정받으면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해온 육참총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급격한 위상변화를 겪게 된다.

창군이래 육참총장은 대부분의 신생국가가 그러했듯 국가안보와 정권안보의 책임을 함께 맡아온 탓에 정치권의 변화에 따라 숱하게 부침을 거듭해왔다. 48년 이응준(李應俊) 소장이 초대 육참총장을 맡은 이후 창군50년인 올해까지 김동신(金東信)현 총장을 포함, 모두 30명이 육군의 총수에 올랐다.

48년 최초로 장군승진 기록과 함께 2대총장을 지낸 채병덕(蔡秉德) 총장은 50년4월 총장에 재기용됐으나 6·25전쟁의 책임을 지고 79일만에 경질됐다. 채총장의 후임으로 불과 33세에 육군의 총수직에 올라 최연소총장의 기록을 세운 정일권(丁一權) 총장은 이후 최장수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줄곧 정권의 핵심에서 한시대를 풍미했다. 6·25전쟁중 숱한 전공을 세우면서 53년 창군이래 처음 대장에 진급, 한국군 역사에 새장을 연 백선엽(白善燁) 총장도 창군기 육군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시기 가장 기억되는 인물은 부산 임시수도 시절 정치적 목적을 위한 자유당정권의 병력 동원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했던 6대 이종찬(李鍾贊) 총장이다. 군의 중립성을 끝내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순수한 군인 이총장은 지금까지도 「육군의 정신」으로 존경받고 있다.

5·16군사쿠데타를 계기로 군은 정치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로 전환된다. 14대 장도영(張都暎) 총장은 5·16쿠데타 직후 당시 사실상의 최고통수권자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겸임하기도 했으나 곧 「혁명주체」세력에 밀려 숙정되는 곡절을 겪었다. 이때부터 군은 본격적인 정권유지 수단으로 변질됐으며 이에 따라 육참총장도 통치권자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하는 정치군인으로 대부분 충원됐다. 육참총장은 이 대가로 재직시 장관이상의 막강한 권력과 퇴임후 정치권의 요직을 보장받았다. 이북군맥이 주도하던 군핵심부가 19대 서종철(徐鐘喆) 총장을 정점으로한 영남군맥으로 바뀐 것도 이 시기부터다.

79년 정승화(鄭昇和) 총장을 강제연행한 12·12군사반란과 함께 등장한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군의 정치화와 지역편중적 성격은 더욱 노골화했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주도한 군내 사조직 「하나회」는 24대 황영시(黃永時) 총장을 시작으로 정호용(鄭鎬溶) 박희도(朴熙道) 이종구(李鍾九) 이진삼(李鎭三) 김진영 총장까지 내리 6대를 이어가며 육참총장을 독식했다.

군 서열상 상급자인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을 넘어 사실상의 군부 최고실권자로 행세해온 육참총장의 위상은 문민정권이후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된다. 이에 앞서 91년 실병력을 동원하는 군령권을 합참의장에게 이관한 「8·18」군구조개편도 육참총장의 힘을 크게 제한하는 계기가 됐다.

이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전통적」인 육참총장의 위상을 지키려했던 이가 31대 윤용남(尹龍男) 총장이다. 윤총장이 이양호(李養鎬) 국방부장관과 인사권을 둘러싸고 밀고 당기는 파워게임을 벌이는 과정에서 장군진급예정자의 인사카드가 국방부와 계룡대를 수차례 오간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1·5군맥」이었던 김동진(金東鎭) 합참의장이 장관으로 영전되고 윤용남 합참의장, 도일규(都日圭) 총장체제가 구축되면서 군의 지휘체계는 국방장관­합참의장­육참총장으로 정상적인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육참총장은 50만 육군의 최고지휘관이라는 점만으로도 그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무엇보다 우선 인사업무관장기능인 군정권을 갖고 휘하 장군 및 영관급의 「명줄」인 진급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능력이 엇비슷한 진급심사에서 총장의 낙점은 절대적이다. 미운털이 박힌 장성에게는 언제든지 비토를 행사할 수도 있다. 또 「육참총장은 곧 차기 국방부장관」이라는 인식이 가장 높아 휘하장성들도 후일을 담보하기 위해 장관보다는 총장의사에 더 충실한게 관행이다. 육참총장은 그 힘과 위상에 걸맞게 이·취임식등 각종 의전행사때 예포 19발이 발사되며 이동중에는 무장요원과 차량경호를 받고 대통령과 언제라도 독대할 수 있다.

역대 육참총장들의 짙은 정치색때문에 군은 「국민의 군대」보다는 집권자의 친위대란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정치군인도 없어야 하지만 군을 정치에 이용하는 불행한 역사도 더 이상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 강군은 국민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정덕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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