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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총수(한국의 파워포스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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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총수(한국의 파워포스트:7)

입력
1998.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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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手足­치안총책 영욕의 1인2역/집권자 입김따라 53년간 51명 교체 5공땐 8명중 5명이 영남출신/檢·軍·안기부와 업무중복 잦은 갈등/박현식씨 차지철씨와 영역다툼 유명/새정부 ‘수사권독립’ 위상 강화나서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청사는 대나무를 형상화해 지어졌다고 한다. 꺾일지라도 휘지 않는 대나무의 특성을 경찰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삼기위해서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의지는 좀체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권력앞에 때로는 갈대처럼 꺾이고 휜 적이 적지 않다. 이같은 사실은 해방직후인 45년 10월 미군정청에 경무국이 설치된이후 53년동안 경찰총수가 51차례나 바뀐 점에서 엿볼 수 있다. 역대 집권자들은 집권자의 의중을 가장 잘 구현해야 하는 경찰의 총수를 언제나 수족(手足)으로 임명했다. 이 때문에 치안총수는 집권자와 공·사적 인연이 없이는 감히 넘겨다 볼 수 없는 자리가 됐다.

역대 치안총수의 면면을 보면 특정지역 인물이 많다는 것이 특색이다. 5공화국때는 염보현(廉普鉉)씨로부터 권복경(權福慶)씨까지 치안본부장 8명중 5명이 영남출신으로 채워졌다. 이 중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합천출신 인사만 권씨와 유흥수(柳興洙)씨 등 2명이었다.

황해도 출신인 안응모(安應模)씨의 경우 전전대통령의 형 전기환(全基煥)씨와의 인연으로 발탁된 케이스. 안씨가 용산경찰서 교통주임으로 근무할 때 순경출신인 전씨가 부하직원으로 일했고 당시 육군대위였던 전전대통령이 형의 인사청탁을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가 첫 대면을 했다.

이후 베트남전 참전기간 베트남 주재관을 하던 안씨는 연대장(대령)으로 파월됐던 전전대통령을 다시 만나 깊은 교분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전전대통령과 동향인 권복경씨의 경우 서울북부서장으로 총경 계급정년을 다 채우고 옷을 벗기 직전 12·12사태로 기사회생, 경무관으로 일약 승진한 뒤 총수까지 지냈다.

15만 경찰이라는 막강한 공권력을 거느린 치안총수이지만 화려한 권력을 휘두르기에는 눈치를 살펴야 할 상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수사권은 검찰, 작전은 국방부, 정보는 안기부 등 경찰의 고유영역은 모두 윗선의 눈치를 봐야할 형편이다. 외청(外廳)으로 독립은 했지만 직속상급기관인 행정자치부의 위력은 여전히 막강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내부적으로 「경찰은 권력기관」이라거나 「경찰수장은 파워포스트」라는 명제에 의문을 나타내거나 냉소적인 반응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독자적인 영역 확보를 시도했던 총수들도 있었다. 「힘없는 경찰」에 대한 한(恨)을 반영하듯 이들은 인품이나 능력여하를 떠나 후배 경찰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74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 의해 초대 치안본부장으로 임명된 박현식(朴賢植)씨. 박씨는 국방대학원원장(중장)으로 재직하다 박전대통령으로부터 경찰조직 쇄신특명을 받고 일약 치안총수가 됐다.

황해도 신천출신인 박씨는 경찰인사나 요인경호 등 업무전반에 걸쳐 당시 경호실장이던 차지철(車智澈)씨와 사사건건 대립, 재임기간 9개월의 단명총수로 마감했다. 경찰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박씨가 존경을 받는 배경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대통령경호실과 맞붙어 외풍을 막으려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내무부 치안본부」로 새겨져 있던 청사 간판을 『자존심 상한다』며 「치안본부」로 바꾸고, 「본부장님」이라는 호칭을 「치안총감」으로 바꿔 부르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종철(朴鍾哲)고문치사사건 직후 총대를 맨 이영창(李永昶)씨도 「시국치안」「민생치안」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는 등 의욕적으로 업무를 추진했으나 권력핵심인사들의 인사청탁을 거부하고 업무간섭에 완강히 맞서다 4개월여 동안 재임하고 물러났다.

91년 초대 경찰청장 김원환(金元煥)씨는 이동호(李同浩) 당시 내무부 장관과 자주 부딪쳤다. 전직 경찰 한 고위관계자는 『김청장은 경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장관의 경찰에 대한 간섭을 차단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며 『심지어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주재한 한 회의에서 두 사람이 격론을 벌여 참다 못한 대통령이 주의를 주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국민정부 출범과 함께 호남출신으로 치안총수를 맡은 현 김세옥(金世鈺) 경찰청장이 내놓은 화두는 「수사권 독립」이다. 검찰의 거센 견제에 맞서 어떻게 경찰 위상을 강화하고 독자성을 확보해나갈 지 두고 볼 일이다.<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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