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부재 등 우리와 닮은꼴/유럽·美까지 파장 미칠땐 세계 대공황 발생할수도”러시아의 외채 지불유예 선언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일본과 중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급기야는 작년에 겨우 마이너스 성장의 긴 터널을 벗어난 취약한 러시아 시장경제에 상륙한 것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러시아가 차지하는 정치·안보적 중요성이나 서방 세계에 미치는 영향등을 고려하여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러시아 경제위기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모라토리엄이라는 최악의 사태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망과 달리 러시아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이번 위기가 미국이나 국제통화기금(IMF)등 국제기구의 능력으로도 막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러시아 경제위기는 이미 작년 하반기 이후 여러 곳에서 징후가 나타났다. 우선 주요 거시지표상으로 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지 않았다. 작년에 0.4%라는 체제전환 이후 최초의 플러스 성장을 시현한 이후 금년 상반기에 다시 마이너스 0.5%로 실질 GDP성장률이 후퇴하고 있다. 95년이후 월 평균 약 17억달러의 흑자를 유지해 오던 무역수지가 국제유가하락 등의 요인으로 인해 금년 들어 월 평균 6억달러 수준으로 흑자 규모가 급감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 원인은 외환보유고의 급격한 감소와 단기채무의 증가이다. 작년 9월말 250억달러였던 외환보유고는 아시아 금융위기로 개도국 투자에 불안감을 느낀 서방 투자가들이 대거 철수하면서 12월말에 180억달러로 급격히 감소하더니 금년 5월말에는 140억달러 수준까지 줄었다. 지난달말 IMF로부터 들여온 48억달러의 긴급구제금융도 8월 들어 환율 방어로 거의 소진됐다. 단기채무도 95년이후 재정적자를 보전하기위해 발행하기 시작한 루블화 표시의 단기성 국채(GKO)의 금년 상환 도래분만 약 2,500억 루블(약 406억달러)에 달할만큼 급격히 늘어났다.
금번 사태는 러시아 국내외적으로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러시아 국내적으로는 보·혁 간의 정치·경제적 갈등이 한층 첨예해질 전망이다. 대형 은행 등 신흥 금융재벌을 경제 기반으로 하는 개혁파는 위기의 책임을 사사건건 개혁에 제동을 걸어 서방 투자가들의 발길을 돌리게 한 의회 등 보수파에게 돌리면서 러시아 경제를 명실상부한 선진국형으로 개조할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반면 군수산업 등 구소련 시대 기업의 결합체인 산업 집단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파 입장에서는 경제 파탄의 책임을 물어 현 옐친 정권의 퇴진 운동을 벌이는 등 권력 쟁취의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려 할 게 분명하다. 이번 위기를 현 정권이 잘 넘긴다면 러시아 자본주의도 본궤도에 진입할 것이지만 실패한다면 상당 기간 국가 체제의 진로를 둘러 싼 진통속에 퇴보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는 지난 70년 이상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자본주의 체제 밖에 머물러 있던 러시아가 드디어 자본주의 시장권에 명실상부하게 편입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 우리 나라가 너무나 닮은 꼴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감독기능이나 투명성이 결여된 방만한 금융권의 확장 등이 그렇다. 사실 러시아는 체제전환 초기에 한국의 재벌을 모델로 한 산업정책을 추진해 왔다. 끝으로 이번 사태가 제대로 수습이 안 될 경우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전통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양면성을 갖고 있는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어 미국 경제마저 뒤흔든다면 그야말로 세계 대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대책은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교훈을 음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러시아 경제>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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