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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서화가 집대성 ‘槿域書畵徵’/70년만에 한글완역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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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서화가 집대성 ‘槿域書畵徵’/70년만에 한글완역 재탄생

입력
1998.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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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 선생이 1928년 출간/삼국∼韓末 1,117명 수록/관직·일화·정치상황 등 상세/미술書 첫 시대별정리도 의미「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은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최고수준의 사서(辭書). 「근역」은 우리나라, 「징」은 「관련 자료모음」이라는 뜻.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이 1910년부터 자료를 모아 1917년 탈고, 1928년 계명구락부에서 출간했다. 당대 최고의 감식안으로 통했던 위창이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우리 고서화가)흩어지고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이 70년만에 한글완역본 「국역 근역서화징」(시공사)으로 재탄생했다. 한글 완역본은 상·하권 외에 원본의 영인본등 3권으로 돼 있다. 59년 한국서화인명사서(한양문화사)라는 제목으로 발췌번역됐으나 서화연구자들의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한국서화 연구의 기본서인 근역서화징은 작품 270여 점에 작가 1,117명을 수록하고 있다. 위창은 한말 역관이자 개화사상가로 서화수집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오경석(吳慶錫)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창은 역관, 한성순보 기자,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을 지내고 손병희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한 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활동했다. 서예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위창은 아버지의 서적과 서화, 그리고 손수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삼국시대 솔거부터 한말의 안중식 조석진에 이르는 서화가들을 출생연도별로 구분하고 자, 호, 본관, 관직, 사망연도를 상세히 정리했다. 이처럼 방대한 자료와 꼼꼼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이다. 우리나라 미술서중 최초로 왕조구분이 아닌 시대구분을 도입해 기술한 점도 특징. 조선을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했는데 이 구분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떤 사람이 산수화를 그려달라 했는데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은지라 그 사람이 이상히 여기고 따지니, 칠칠이 붓을 획 던지고 일어나서 『이 맹추야! 종이 밖은 모두 물이 아니냐』고 했다」. 조선시대 괴짜화가 최북(崔北)을 설명한 일화. 여기서 칠칠은 「七七」로 최북의 이름 북(北)자를 파자(破字)한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일화 외에도 곳곳에서 한시를 인용, 설명했고 당쟁, 사화 등 정치적 언급도 많아 문·사·철(文·史·哲,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데도 긴요하다.

그러나 모든 내용이 한문이라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완역한 이는 한학자 홍찬유(洪贊裕·83·(사)유도회 한문연수원장)씨와 제자 김상엽(영산대 겸임교수·한국미술사), 정후수(한성대 교수·한문학)씨등 동양고전학회 회원 8명. 6년간 국립중앙도서관의 「위창문고」를 찾아 원전을 일일이 대조, 350여곳의 오류를 수정하고, 2,400여개의 역주를 달았다. 그간 「이정(李楨)」항목의 「□川度」를 조선중기의 서화가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으로 추정했지만 「간이당집(簡易堂集)」을 통해 「안가도(安可度)」, 즉 「안견(安堅)」임을 밝혀내기도 했다.<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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