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린시절… 생활苦… ‘추억담긴 항아리’「생활일기」연작으로 현대적 한국화를 개척하고 있는 석철주(石鐵周·48·추계예술대 교수)씨에게 「항아리」는 그림의 시작이자 최근 다시 다가선 주요한 소재이다.
인왕산 자락의 서울 종로구 누하동.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실을 얻기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아온 그에게 항아리는 어린 시절 추억의 한 단면이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흰 무명옷을 정갈히 차려입고 장독대에서 항아리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열심히 치성을 드렸다. 물론 어린 그에게 장독대는 가장 친근한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항아리는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이 숨기에 가장 좋은 곳. 여느 아이들처럼 그 역시 커다란 항아리 속에 숨었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린 추억을 갖고 있다.
항아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에게는 호구의 방편이 되기도 했다. 그는 항아리 속에 진흙을 바르고 연탄을 들여 앉혀 고구마를 구워 팔았다. 세월이 지나 군고구마를 팔던 그 자리에는 건물이 들어섰고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바로 그 건물에 작업실을 얻어썼다. 항아리는 또 그의 늦장가에도 사연을 더한다. 화실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그는 건물이 팔려 왕십리로 이사를 가게 됐다. 제자들이 작업실의 항아리를 옮기던중 사고가 났다. 2층 계단으로 큰 항아리를 내리던 학생 2명이 그만 마당으로 떨어져 많이 다쳤다. 하지만 항아리는 말짱했다. 아직도 그의 집 한 켠에 놓여 있는 항아리는 그에게 뗄 수 없는 추억이자 화두이다.
물론 달라진 점은 있다. 아크릴과 토분을 섞은 재료로 90년 처음 발표한 항아리그림에서는 항아리 자체로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풍경 속에 항아리를 둔다. 창 너머로 보이는 항아리를 그림으로써 그는 세월이 주는 여유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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