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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한기봉 국제부장(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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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한기봉 국제부장(광화문)

입력
1998.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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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냐, 안했냐』로 미국이 시끄럽다. 8개월째다. 했다면 어디까지인가? 그렇다면 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인가, 진실인가? 그 진위를 가릴 클린턴의 연방대배심 비디오(CCTV)증언이 18일 새벽에 이뤄졌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는 스티븐 소더버그감독의 영화 제목이 연상되는 상황이다.르윈스키 스캔들은 너무나 「통속적」이다. 한 외신의 표현을 빌리면 저급한 멜로드라마다. 주연과 조연, 배반자, 밀고자, 악역 등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목격자만 없을 뿐이다. 국가통치자의 성기 특징과 오럴 섹스, 정액이 묻었다는 감청색 드레스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갈 데까지 다 간 스토리다.

그러나 그 무대가 세계의 심장인 백악관 오벌룸(대통령 집무실)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이 사건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의 탄핵까지도 가능하게 된 마당이니 「옐로」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연일 미 언론의 1면을 뒤덮고 있다.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태평천하이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없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힐러리의 항변처럼 보수세력의 정치적 음모라는 설도 있다. 또 24시간 뉴스 채널의 경쟁적인 등장에 이 스캔들은 호재중의 호재로 뉴스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클린턴의 증언을 앞두고 미 여론조사기관 폭스가 전한 미국민들의 코멘트는 이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여러 생각을 매우 솔직하게 보여준다. 『나라 전체가 여자 한 명 때문에 위험에 빠져서야 되겠어요? 모두가 이젠 지쳤어요』 『대통령이 진실을 숨겼다고 보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섹스에 대해선 거짓말을 하는 법이잖아요』 『미국의 도덕수준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 지 모르겠어요』 다음 코멘트는 차라리 코미디다. 『대통령직이 오죽 힘든 자리입니까? 아마도 르윈스키는 클린턴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좀 덜어줬는 지도 모르죠』

이제 신물이 났으니 그만 떠들자, 대통령도 인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최근 CBS와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75%가 클린턴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65%는 대통령직 수행을 여전히 지지했다. 탄핵을 주장한 사람은 불과 20%였다.

미국의 가치관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클린턴의 지연전술이 효과를 거둔 것일까? 74년 닉슨의 사임은 그의 과오가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이었다. 클린턴은 이번 증언에서 위증 혐의를 피해가면서 결국 르윈스키와 성관계에 대해 일부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왜 클린턴은 생각을 바꿨을까? 국민의 변함없는 지지율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서 미국민들이 보인 분명한 태도는 대통령은 도덕적 지도자이기 보다 정치적 지도자이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여론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평화)」를 구가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기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초(超)슈퍼파워 미국의 현실에 대한 만족감에서 나온 것이다. 「빵」을 해결해 주었으니 「허리 아래」와 거짓말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그를 살린 경제가 결국 그를 다시 죽일 수도 있다는 재미있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전후 최고의 호황에서 아시아 경제위기의 여파로 침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미 경제의 상황 여하에 따라 여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마무리 절차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적 게임도 개입될 수 있다. 그가 어쩔 수 없는 막판 상황에 떠밀려 진실을 일부 털어놓았다 해도 거짓말의 덫은 「슬릭 윌리」(Slick Willie·교활한 클린턴)를 완전히 해방한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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