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사 여탈권 ‘경제 파수꾼’/막강한 과세권 기업·정치인 ‘군기’/71년 “DJ에 정치자금” 삼학소주 문닫게/박태준·정주영씨도 한때 곤욕/정권·지역과 脈… TK·軍출신 압도적/대부분 3년 이상 역임 ‘비교적 장수’한 국가는 형벌권과 과세권을 통해 권위를 갖는다. 국세청장은 국가권위의 상징중 한 축인 과세권을 행사하는 자리다. 국세청장이 직급은 차관급이지만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경제분야 최고의 힘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세청장의 교과서적 역할은 나라 살림살이를 제대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돈을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세금을 많이 거두는 것이 아니다. 소득에 맞춰 공평하게 부담토록 해야 한다. 국세청장은 벌이 수준이 천차만별인 자본주의에서 많이 번 사람에게 많은 세금을 매기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역할을 맡고 있다.
공평하게 과세하려면 과세대상자가 제대로 소득을 신고하는지, 벌이는 투명한지 등을 가려내야 한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예외 아니다. 그러려면 소득이나 씀씀이 등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쓰는 지를 파악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국세청장은 그런 정보를 모두 갖고 있다. 국세청을 「경제분야의 핵심일꾼」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가정의 밥숟가락이 몇개인지까지 훤히 알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국세청장의 파워는 이같은 완벽한 정보에서 출발해 세금을 공평하게, 정당하게 내도록 강제할 수 있는 권한으로 마무리된다.
국세청장이 갖고 있는 정보와 조사 및 과세권 등은 상상이상이다. 개인으로 보면 음성 불로소득이나 부의 변칙적인 이전, 재산도피행위 등이 국세청의 관리대상이다. 국세청이 대상자를 가리고자 해서 못가려낼 게 없다. 국세청은 심지어 룸살롱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의 명단까지 확보해 놓고 여차하면 대상자를 내려칠 수 있다. 부동산투기자나 부정축재자 단속이 국세청의 주요 업무중 하나인 것은 바로 개인의 재산축적과정과 씀씀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있다.
기업에 대해서는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다. 대기업들의 「군기」를 잡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차하면 세무조사란 칼로 기업의 목을 겨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특히 특별세무조사를 받는다고 알려지면 해당기업의 대외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다. 기업의 도덕성을 의심해 정부가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사 자체만으로도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국세청장이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으니 권력핵심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언제든지 정치적인 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리가 국세청장이다. 개인과 기업의 재산내역이나 소득, 소비행태 등을 훤히 꿰고 있기 때문에 정치자금의 흐름 역시 국세청장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국세청이 권력과 사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는 손으로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취임 초기 국세청은 사정의 중추기관이었다. 8대청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추경석(秋敬錫) 청장은 김영삼 대통령 당선이후 9대청장에 재임용됐다. 그후 추청장이 처리한 업무중 대외적으로 가장 민감했던 것은 포항제철과 박태준(朴泰俊) 당시 포철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였다. 박회장은 정권창출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로 압력을 받고 급기야 외국으로 떠나야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71년 김대중(金大中) 현 대통령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대통령선거때에도 국세청의 본격적인 정치개입이 있었다. 2대 국세청장인 오정근(吳定根·작고) 청장은 당시 「김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명목으로 목포에 있는 삼학소주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실시, 결국 그 회사의 간판을 내리게 했다. 7대 서영택(徐榮澤) 청장은 대선에 뛰어든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 창업주 일가에 대한 주식증여 세무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여 사상 최대의 추징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한 조사였음은 물론이다.
국세청장 자리가 이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자리이다보니 자리 자체도 완전히 정치적으로 결정됐다. 국세청이 간판을 내 건 것은 군사쿠데타후 시작된 1차 5개년계획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경제재건이 가시화하던 66년. 당시 박대통령은 대통령비서관으로 조세행정특별조사반장을 맡고있던 이낙선(李洛善·작고)씨를 초대 청장에 임명했다. 측근중 측근을 자리에 앉힌 것이다. 이후 국세청장자리는 군출신이 압도적이었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무소불위기구였던 사회정화위원회 위원장 출신 안무혁(安武赫)씨를 국세청장에 앉혔다. 국세청이 정치적으로 입지를 더욱 확고히하는 계기였다. 안청장은 이후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국세청장이란 자리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8대 추청장때에 들어서야 비로소 내부에서 승진했다. 이후 내부승진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으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거의 변함이 없다.
국세청장의 지역연고도 정권의 부침과 거의 맥을 같이 한다. 대구·경북지역, 소위 TK가 오래 집권한만큼 10명의 청장중 4명이 경북출신이다. 부산·경남출신도 2명이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한명씩이며 강원과 호남지역에서는 한명도 없다.
국세청장은 또 장수하는 자리다. 일반적으로 관료들은 한자리에서 2년가량이면 비교적 장수한다고 이야기되나 국세청장은 대부분 3년이상 역임했다. 10명중 4명이 3년을 넘겼고, 4년 넘게 자리한 청장도 3명이나 됐다.
새정부 들어 임명된 이건춘(李建春) 청장은 국세청 내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70명을 면직 파면 등 인사조치하고 전체 인력의 77%를 자리바꿈하는 등 대대적인 사정을 실시했다. 이청장의 이같은 결정은 자체적으로 내부를 정리한 뒤 공평과세, 음성불로소득 척결 등 개인과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을 실시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져 주목되고 있다.<이종재 기자>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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