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대졸구직 32만명에 일자리는 3만뿐/유례없는 구직난 속 기업마다 ‘취업청탁’ 몸살『「배경」이 없으면 취직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사상최악의 취업대란이 빚어지면서 대학가 여기저기서 「배경」을 한탄하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서울대의 박모(25)군은 『어쩌다 들어오는 취업자리를 거의 고위층 자녀들이 차지해버린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빽」이 없으니 서류심사에서 떨어지더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대학가는 집단적인 절망감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업들 역시 외부인사들의 청탁을 견디다못해 회사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그림자채용」방식을 고안해내기에 이르렀다. 롯데그룹의 한 계열사는 채용전문회사의 이름으로 최근 신입사원 몇명을 뽑았다. LG전자는 청탁자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배경」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우리사회의 병리현상. 올해 취업전선은 그 어느 때보다 「배경」이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 같다.
먼저 50대 재벌그룹 가운데 하반기 채용계획을 밝힌 그룹은 아직까지 한 곳도 없다.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다, 기업퇴출이다 해서 도무지 공채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룹 종합기획실, 경영조정실등 그룹본부조직이 폐지되면서 그룹차원에서 채용계획을 수립할 담당자가 없어진 경우도 많다. 그룹인사팀 자체가 구조조정으로 대상으로 지목돼 사라졌다.
노동부와 채용조사 전문기관들은 50대 그룹이 기껏해야 올해 5,000명을 뽑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예년의 3만명선에 비하면 6분의 1로 축소되는 셈이다.
공무원 채용시험 조기실시에다 공기업, 외국기업, 벤처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을 모두 합쳐봤자 올하반기 신규채용은 총 3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비해 직장을 구해야 하는 대학졸업자 및 대졸예정자는 32만명.10명중 1명만이 간신히 직장을 잡아 사회에 진입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년 2월 대졸 예정자는 19만5,000명. 이중 유학 또는 군대를 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할 3만5,000명을 빼고 16만명이 직장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취업 재수 및 삼수생 16만명이 더해진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재수·삼수생이 8만명에 불과했으나 1년새 2배로 늘어났다. 시험에 합격하고도 입사발령을 못받거나 입사직후 기업들이 도산하는 사태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취업대란을 피해 휴학하는 학생도 급증하고 있다. 일부 명문대의 경우도 전체학생의 25%가 휴학중이거나 휴학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내년이 되면 휴학생들까지 몰려나오기 때문에 한층 심각한 현상이 빚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제 직장을 잡으려면 기존의 직업관을 바꾸어야 한다』고 유제흥(柳濟興) (주)리크루트 정보관리팀장은 강조한다. 기업들은 핵심인력을 둘러싸는 주변인력을 종전에는 1∼3년차의 신입사원으로 채웠지만 IMF이후 인턴, 파트타임, 임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우선 임시직 등으로 들어가 정규직원(핵심인력)으로 진입할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이 채용공고를 내면 하룻만에 사람이 차버리기 때문에 매일아침 PC통신과 인터넷으로 채용정보를 검색하는 일도 필수적이다.<최원룡 기자>최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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