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까지 은행부실채권 정리 마무리”/“개별기업 구조조정 정부간섭 없어야”/“정부,공공기관 고용조정 미룰수 없다”/“지금당장 경기부양책써도 효과 의문”/“구조조정한 기업부터 무역금융 지원”/“정부는 독과점 개선 등 걸림돌 제거를”/“환율·수출정책 등 전향적 검토 필요”/“美 경제 파국대비 철저한 대책 세워야”□사회:이선 산업연구원장
□토론참석자: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김원길 국민회의정책의장/조동성 서울대 교수/박병윤 본사 사장
■이원장
민경휘(閔庚輝) 소장께서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경제의 위기타개를 위한 4가지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즉 경제적 자유 신장, 시장경제질서 확립,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혁, 실업사태 등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전제돼야 한국경제가 중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민소장은 이를 위해 시급한 5가지 대책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해 우선 이장관께서 견해를 말씀해주시지요.
■이규성 장관
우선 정부의 정책방향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정부 출범이후 4월까지는 외화유동성 확보에 중점을 뒀고 5, 6월부터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해 55개 기업과 5개 은행의 퇴출이 이뤄졌습니다. 이제 9월을 분수령으로 해서 1단계 구조조정을 마치고자 합니다. 9월말까지는 금융기관의 자본확대, 부실채권정리 등이 일어날 것입니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크게 2가지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신용경색현상이고 두번째는 기업도산에 따른 대량실업입니다. 7월말 국제통화기금(IMF)과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긴축정책을 완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신용경색과 대량실업에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신용경색과 이로 인한 산업기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입니다. 신용경색은 중소기업 자금사정과 서민들의 주택문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힙니다. 중소기업에는 신용대출과 수출보험공사의 보증확대, 서민들에게는 국민주택기금 확대를 통해 신용경색을 보완해주고자 합니다.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사회간접자본(SOC)투자를 확대하고 공공 및 지방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늘렸습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업의 경우 입고 먹는것, 질병에 대한 치료, 자녀교육만큼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하에 사회적인 안전망을 확대하는 부분에 자금을 배분했습니다. 신용경색과 실업증가에 대처하면서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2000년부터는 성장잠재력에 가까운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원장
9월말까지 1차 구조조정을 끝내고 2000년부터는 잠재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는 일정에 대해 혼돈이 있을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보충설명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장관
9월말까지 우선 은행의 자본확충과 부실채권정리를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보험 리스 등도 9월까지는 큰 가닥을 잡아 나가겠습니다. 후반기에 기업의 경쟁력있는 부분을 키우고 부실부분을 떼어냄으로써 체질을 튼튼히 하는 기업개선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입니다. 9월말까지는 구조조정이 복합적이고 중추적이며 강도높게 이뤄지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입니다. 구조조정을 너무 오래 끌면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9월이후에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기자본 충실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내년말까지는 이를 끝내고 2000년이면 잠재성장률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잠재성장률을 실현한다고 해서 과거처럼 연간 8, 9%의 성장율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최대 5∼6% 성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업률도 2∼2.5% 수준은 상상할 수 없고 적어도 4∼6%를 유지한다는 생각입니다.
■김원길 의장
사실 구조조정과정에서 살아남아야 할 기업들이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미세조정(파인 튜닝)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경기부양 논의가 구조조정자체를 포기하거나 속도를 더디게 해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경기를 더 이상 가라앉게 해서는 안된다는 데는 공감합니다. 문제는 경기부양의 시기와 폭입니다. IMF와 이미 재정적자폭을 4%, 17조5,000억원으로 합의했는데 이를 당장 6%로 늘린다고 해서 이것이 곧 과감한 경기부양책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이미 내년도 예산에 재정적자 6%는 반영이 돼 있는 상태입니다. 금년에도 1조원대로 예상되는 수해피해 복구비를 감안하면 재정적자폭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수출이 경제난국 타개의 최고수단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출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품과 허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는 2, 3년기간의 수출금융지원을 해달라고 하는데 이런 수출은 대부분 허수입니다. 수출을 돈을 빌리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또 다시 우리 기업들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수출을 금융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는 대부분 5대 그룹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당장 무역금융을 확대하면 수출은 늘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수출지원에는 이의가 없지만 5대 그룹에 무역금융을 지원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공공기관의 「질적 고용조정」은 정책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정부 부처의 사무관 하나 해고 못시키면서 국민들에게만 고통을 감당하라고 하느냐」는 것이 국민정서입니다. 정부가 앞장서지 않으면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힘듭니다. 원론적으로 봤을때도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구조조정인데 효율성이 가장 뒤진 정치와 정부부문을 구조조정 하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질적인 구조조정은 효율성이 저하되지 않고 경쟁력강화에 해악이 안되는 한 민간 공공부문 가릴 것 없이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에서 정부 여당의 몫은 자율적 구조조정의 기반이 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입니다. 국회가 개원되지 못하고 여당이 소수당인 탓에 경제개혁입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을 꾸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국회가 열려 경제개혁입법이 처리되면 「속도가 늦다, 가시화하지 않는다」는 여론은 완화할 것입니다.
■조동성 교수
위기의 원인에 대한 규명에 따라 대책도 달라집니다.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치유를 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경상수지흑자에 최선을 다해 1,538억달러의 외채를 갚는 것이고 둘째는 당장의 외환위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기업정책도 달라져야 합니다. 전자를 택한다면 재벌 구조조정은 필요가 없고 5대 그룹에 대한 무역금융도 허용되야 합니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후자를 택하면 무역금융같은 지원은 5대 그룹이건 아니건 구조조정이 끝난 기업에 국한돼야 합니다.
한국경제는 전자보다 후자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초미의 과제는 수출금융이 아니라 재벌그룹 구조조정입니다. 재벌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재벌그룹 오너가 경영권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재벌은 첫번째 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재벌그룹의 구조조정을 끌어내려면 대화의 상대를 잘 잡아야 합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적절한 상대가 아닙니다. 기업들마다 사업규모나 경제사정이 다른데 이들을 한데 묶으면 자연히 공동전선을 만들어 정부에 대항하게 돼 불필요하게 재벌의 힘을 강화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정부는 개별기업의 구조조정 내용까지 간섭해서는 안되고 구조조정의 걸림돌 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독과점 구조 개선, 부당내부거래 근절, 사외이사제 확립, 소액주주권 확립, 경영책임추구, 차등이자 지급 등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예가 될 것입니다. 공공부분은 빨리 거듭 태어나고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어차피 퇴출돼야 할 잉여근로자들의 퇴출시한을 2, 3년 늦춰주면 이미 민간퇴출자들이 자리잡은 부분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공공부분도 구조조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합니다.
대증요법은 쉽고 근치요법은 어렵습니다. 겁이 난다고 해서 대증요법에 의존하면 한국경제는 회생할 수 없습니다.
■박병윤 사장
경제정책 수립과정에서 정부는 소수의견과 비판을 검증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문민정부 경제정책에 파산선고가 내려진 이유는 비판론을 수용하지 않아서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환율정책입니다. 미국처럼 자국통화 고평가정책을 지속하는 것을 비판하면 바보취급을 했습니다. 환율정책도 좀더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수출금융을 과감하게 지원해 주는 등 총력지원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일부 구조조정과 상충되는 측면도 있지만 현명하게 병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합니다.
아울러 새로운 위기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경제는 거품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10년간의 고도성장의 거품이 나타나면서 미국경제는 대공황 전야를 연상케하고 있습니다.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아시아경제위기가 부머랑이 되서 미국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등 미국경제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경제가 파국에 이른다면 파괴력은 가공할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철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원장
새로운 위기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합니다. 지난해 발생한 아시아 경제위기가 세계로 파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계불황으로 연결되기보다는 내년부터는 회복기에 접어들어 2000년에는 성장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낙관해서도 안되겠지만 너무 비관해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장관
마지막으로 5대 그룹 무역금융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현재 5대 그룹은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역금융은)구조조정과도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지금 5대 그룹은 자금이 부족하지 않다고 봅니다. 5대 그룹 무역금융 지원은 현시점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원장
바쁘신 가운데 시간을 넘겨가며 토론에 임해주신 참가자 여러분과 방청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정리=김준형 기자>정리=김준형>
◎플로어 토론/“구조조정 계획 있는가”/“원칙과 목표대로 진행”
이날 토론회는 초청자 이외에도 기업인, 경제부처 공무원, 각종 경제연구소관계자 등이 대거 참석, 대회의실 빈 공간에 임시좌석을 빽빽이 놓아야 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경제난의 원인, 한국경제 현황, 경제난극복대책 등을 골자로 20분에 걸쳐 민경휘(閔庚輝)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주제발표를 한데 이어 이규성(李揆成) 재정경제부 장관, 김원길(金元吉)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조동성(趙東成) 서울대 교수, 박병윤(朴炳潤) 한국일보 사장이 순서대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토론회는 국내 5대 그룹에 대한 무역금융 허용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져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낮 12시30분에야 끝났다. 패널리스트들의 토론이 길어져 20여분의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청중들도 많은 질문과 의견을 쏟아냈다. 세계경제연구원 구영훈씨는 『「빨리빨리」라는 말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으나 우리 경제가 그 속도를 감내할 수 있는지, 구조조정에 필요한 치밀한 계획이 서 있는지, 재계의 빅딜을 정부가 앞장서 추진하는 것이 옳은지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 『기업의 구조조정은 분명한 원칙과 구체적인 목표 아래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며 『국제화시대에 우리의 제도와 관행이 국제적 기준에 뒤처져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서사봉 기자>서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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