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朴 총무 ‘성의있는 선행조치’ 요구/DJ,朴 의장에 ‘협조요청’ 공한 보내 맞장단/野 내부논의중 자민련 具 총무 ‘보안’ 깨 찬물12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회에 협조를 요청하는 「공한」을 보냄으로써 급피치를 올리던 여야간 국회 정상화 협상이 막바지 고비를 넘지 못하고 멈췄다. 김대통령은 이날 박준규(朴浚圭) 국회의장 앞으로 공한을 보내 『다시 요청하오니 총리임명동의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하루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회 안팎에서는 여야가 이날중으로 총리임명동의안 처리를 포함한 국회정상화에 극적인 타결을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급속히 확산됐다. 김대통령의 공한은 사실 여야 협상과정에서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총무가 요구한 「대통령의 성의있는 선행조치」를 정치적으로 수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박총무는 11일 김윤환(金潤煥) 전 부총재 등과 장시간 숙의를 거친 끝에 박의장 주재로 열린 3당 총무회담에서 대통령의 선행조치에 의한 해법을 전격 제의했다. 제의의 요지는 이제껏 「동의안 철회후 재제출」을 주장해온 한나라당에 국회참여 명분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1일 총무회담에선 대통령 공한의 문안 내용에 대해서도 기초적인 논의가 이뤄졌고 박총무가 초안(草案)을 다듬었다는 후문이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 총무는 이를 즉각 청와대에 보고했고 13일 아침 이강래(李康來) 정무수석으로부터 「OK」 사인이 왔다. 이러한 내막에 덧붙여 대통령 서신이 사신(私信)이 아닌 「공한(公翰)」의 형식을 취했고 「다시 요청한다」는 표현으로 한나라당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용한 듯한 흔적을 보인 점 때문에 여야간에 당연히 극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박총무가 「공한카드」를 들고 당지도부를 만나는 사이에 자민련 구천서(具天書) 총무가 성급하게도 『13일 국회본회의를 열어 총리임명동의안과 민생특위 구성등을 처리키로 여야가 잠정 합의했다』고 「보안」을 깨며 국회정상화가 완전합의된 듯이 발표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당장 박총무는 『총무 논의과정에서 방향이 잡혀도 당내 설득·무마작업이 필요한데 덜컥 협상이 끝난 것처럼 흘리면 어떡하자는 것이냐』며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기택(李基澤) 총재대행도 박총무의 보고를 듣고 『유감표명과 재제출로 보기에 미흡하다』며 대통령 공한을 평가절하했으며 급기야 긴급 소집된 고위 당직자회의에서 『원구성부터 하자』는 강경론으로 선회함으로써 모든 것은 없던 일로 됐다.<고태성·김광덕 기자>고태성·김광덕>
◎“다된 밥에 재뿌리나”/국민회의,구천서 총무 원망
12일 오후 내내 자민련 구천서(具天書) 총무는 국민회의에게 「한나라당보다 더 미운 사람」이었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려도 유분수지』 『정치는 역시 연륜이야』라는 원성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모두 구총무가 이날 오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공한과 관련한 여야 총무간의 물밑 합의사항을 「때이르게」 공개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였다.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총무가 야당내에서 의견을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은채 섣부르게 잠정 합의사항을 공개해 버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어 버렸다』는게 국민회의의 인식.
무엇보다 한화갑(韓和甲) 총무는 구총무의 발언을 일언지하에 부인해 버리는 것으로 유감을 표시했다. 한총무는 당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구총무의 얘기처럼 여야 총무들이 의사일정을 합의한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들이 구총무의 발표를 상기시키자 『내가 합의해 준 일이 없는데, 어떻게 여야 총무가 합의했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총리임명동의안 문제로 국민회의가 자민련한테 적잖은 부담을 느껴왔는데 자민련 총무가 중요한 고비에서 일을 망쳤으니 우리로서도 이제 할 말이 생겼다』고 색다른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벼랑끝 합의에 대한 기대를 끝내 못버리는듯 『비관적으로만 보지말라』고 말해 13일 아침까지 모종의 작업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구총무는 『청와대측에서 먼저 공한 전달 배경을 흘렸기 때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자민련 당직자들은 『총리인준문제에 대해 힘을 모아야 할 국민회의가 구총무를 비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신효섭 기자>신효섭>
◎발끈한 野 ‘시끌시끌’/朴 총무 “협상 깨자는 것인가”/李 대행 “철회후 재상정해야”/院구성 싸고 당내갈등 심화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총무는 12일 자민련 구천서 총무의 「언론플레이」로 국회정상화 협상이 헝클어지자 국민회의 한화갑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단단히 화풀이를 했다. 박총무는 『논의사항을 언론에 흘리는 것은 협상을 깨자는 것 밖에 안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지금까지 논의됐던 내용들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익어가던 밥에 재가 뿌려졌다는 것이었다.
이기택(李基澤) 총재대행은 아예 대통령 공한의 「미진한」 내용까지 문제삼았다. 『대통령의 서한에 유감표명이 전혀 없다』며 『이렇다 할 내용이 없는 대통령 서한 하나에 총리인준투표 과정의 모든 불법사실을 수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행은 또 『여당이 먼저 인준동의안을 철회한 후 재상정해야 투표에 응할 수 있다』며 그간의 당론도 재확인했다. 여권이 산통을 깨는 마당에 야당이 물렁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결기」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와중에 원구성을 둘러싼 당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대행은 『박총무가 민생특위 구성안을 이야기하길래 「그것은 원구성이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그런 관례를 만들면 안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여야 총무접촉에서 비당권파인 박총무가 상임위 문제를 제대로 거론조차 하지 않은데 대한 불쾌감의 표시였다. 김덕룡(金德龍) 부총재도 기자간담회를 자청, 『전대이후로 원구성을 늦추어야 한다는 당 일각(비당권파)의 생각은 어불성설』이라며 『상임위 구성을 한 뒤 총리인준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거듭 못박았다.<홍희곤 기자>홍희곤>
◎대통령 공한 전문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6·25이후 최대의 국난을 맞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국에 걸친 홍수피해로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상황속에서 총리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않아 국정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다시 요청하오니 총리임명동의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하루속히 통과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제2차 추경예산안과 많은 민생관계 법안등을 긴급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회와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난국극복에 합심노력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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