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위기는 「세계 대공항」으로 이어지는가. 8년만의 최저치로 떨어진 일본 엔화의 충격으로 촉발된 아시아 증시폭락은 「지구촌」을 한바퀴 돌면서 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사태를 초래,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11일 홍콩 주식시장은 5년만의 최저치를 경신했고, 싱가포르는 10년, 말레이시아는 9년, 태국은 11년, 필리핀은 5년반만의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아시아 주식시장이 맥없이 무너졌다. 중국 위안(元)화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거듭된 다짐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대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아시아의 금융위기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인가.◎일본/엔화 8년만에 최저치 기록
11일 도쿄(東京)외환시장에서 엔화가 90년 8월 이래 최저 수준인 달러당 147엔대로 떨어져 「엔저 연쇄반응」 우려가 다시 일고 있다.
이날 순간치로는 달러당 147.63엔, 종장가로는 달러당 147.40∼147.42엔까지 엔화가 폭락한 데는 홍콩 주가가 폭락, 중국 위안(元)화의 평가 절하 가능성이 커진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중국 정부가 보유했던 엔화 표시 채권을 수십억 달러어치나 매각했다는 보도도 「엔 팔자」를 자극했다.
중국 정부는 거듭 연내에는 위안화 평가 절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거꾸로 도를 넘는 엔저가 위안화 평가 절하의 뇌관을 건드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엔저로 아시아 각국 통화가 평가 절하되면 중국도 견디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만연, 다시 엔저를 빚는 악순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 현재 엔저의 근본 요인인 일본 경제의 침체가 좀체로 해결될 기미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은 이날 경제장관회의에 제출한 「8월 경제보고」에서 『경기 저미(低迷)상태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2월 이래 사용된 「정체」라는 표현이 「저미」로 바뀐 것은 경기가 침체 국면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물론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같은 경기 전망으로 보아 당국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없는 한 엔화가 곧 달러당 150엔대에 접어들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그러나 미국 시장의 활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미일 양국의 경기 차이가 시장 심리에 과대하게 반영된 현재의 엔저는 오래지 않아 수정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세계증시/뉴욕 개장하자 212P 폭락
아시아 증시의 폭락은 시차를 두고 유럽과 미국대륙으로 건너가면서 세계증시에 「도미노 현상」을 몰고 왔다.
11일 일본 엔화의 약세로 촉발된 도쿄 증시의 폭락은 곧바로 홍콩증시등 아시아권을 강타하더니 뒤이어 유럽 대륙의 금융중심지인 런던와 프랑크푸르트 증시를 덮쳤다.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증시도 그 태풍권을 비껴가지 못했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공업평균주가지수는 이날 개장과 함께 전날에 비해 무려 140여 포인트가 떨어졌으며 개장 1시간여만에 212.93포인트 하락한 8,361.92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낙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나스닥 지수도 전날보다 45.96포인트 떨어진 1793.26포인트를 기록, 1,800 포인트대가 무너졌다.
런던증시의 FTSE 100 지수는 처음에는 약보합세로 출발했으나 하오 4시 현재 전날보다 162.7 포인트가 하락한 5,458.3를 기록하는 등 폭락세를 면치 못했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지수도 오전장에만 전날보다 3.01%가 떨어진 5,311.23에 거래가 이뤄졌다. 또 파리증시의 CAC 40지수도 하오 2시 현재 전날 대비 3.42%가 폭락한 3,804.81을 기록했으나 관계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11일 증시가 문을 열면서부터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해 두시간여만에 무려 7.5%이상 떨어지자 거래가 일시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주요 주가지수인 RTS지수는 오후 5시 현재 106.65를 기록, 96년 5월6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로 105.81로 떨어진 이래 최저치이다.
◎홍콩/항생지수 이달 1,100P 하락
홍콩 주식시장이 5년만의 최저치로 추락하면서 안정의 가닥을 잡아가던 홍콩 달러화와 위안화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11일 항생(恒生)지수는 전날보다 254.67포인트나 폭락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7,000선 마저 무너뜨렸다. 항생지수는 10일 홍콩 달러화의 환율이 잠시 안정을 되찾으면서 오랜만에 소폭 반등했으나 이날 다시 큰 폭으로 떨어짐으로써 이달들어 1,10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이날 항생지수의 폭락은 일본 엔화가 8년만의 최저치를 경신하며 달러당 150엔대에 근접한 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엔화의 폭락은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와 주식시장을 모두 급락세로 몰아갔고 홍콩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에 홍콩 통화당국(HKMA)이 홍콩 달러의 페그제(미 달러화 연동제)를 고수하기 위해 이자율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항생지수의 폭락을 부추겼다.
이제 문제는 위안화의 향방이다. 중국 당국은 마음만 먹으면 위안화의 평가절하 압력을 견뎌낼 수 있다. 무역거래를 수반하지 않는 외환거래는 금지하고 있어 환투기 세력의 공격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5월중 마이너스 1.5%를 기록했던 수출성장률이 7월에는 3.5%로 반전하는 등 수출이 다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작년 11월 기업들의 자체 외환보유액을 수입액의 10%에서 15%로 늘려 200억달러이상의 비축 여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시아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지 않는 한 홍콩 달러화와 위안화 역시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박정태 기자>박정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