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통령까지 나섰다. 조성우(趙成禹) 참사관의 추방으로 촉발된 한·러 외교전은 7월말 두차례에 걸친 양국 외무장관 회담으로 막을 내리나 했더니 끝내 외교 사령탑인 박정수(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이 물러났다. 스파이전의 명수(?)인 러시아가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번 사태 해결에 외무장관을 내세운 것도 이례적이지만 거기에 말려 청와대가 나선 것도 볼썽사납다.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지난 한달여를 되돌아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러시아가 쌓였던 감정을 터뜨렸다느니,「한국 때리기」에 나섰다느니, 러시아의 노회한 「외교술수」에 말렸다느니, 외교안보팀이 적을 눈앞에 두고 서로 싸웠다느니, 장관이 하루걸러 거짓말을 했다느니, 이면합의가 「있다? 없다?」느니, 추방한 외교관을 다시 받아들인다느니…
다른 한편으로 사태의 맥을 짚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우리가 변하는 러시아를 너무 몰랐다는 자성에서 부터 한반도 주변의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주변 4강에 대한 외교전략을 바꿔야한다는 주문에 이르기까지.
여기까지는 누구든지 보고 듣거나 느꼈을 것이다. 이번 외교전에서 겉으로 드러났던 부분이다. 그렇다면 보이지않는 뒤는 없는 것일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에 연 10억달러어치의 가전제품을 넘기는 가전 3사 등 한국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컨테이너 통관, 대금정산, 세금문제 등으로 한두차례씩 곤욕을 치렀다. 당사자들은 「받아먹을땐 언제고…」라고 욕을 하면서도 쉬쉬하고 넘어간 건 우리측에 구린 구석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시시각각으로 목을 조여오는 러시아 당국의 「보이지않는 손」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으려는 대응이었던 것.
그때 러시아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다. 완전히 무너져내렸던 한 국가의 법체계와 질서가 더디긴 하지만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한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불법적인 「검은 관행」은 이제 자칫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이다. 조참사관의 추방전은 처음부터 이같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측이 치러야할 뼈아픈 대가인지도 모른다. 대응의 잘잘못은 그 다음이다. 외교통상이란 「상대」를 제대로 아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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