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그 어느해 보다 4,500만명 모두가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지리산 폭우에 이어 서울 경기 충청도에 내린 80년만의 폭우는 자연의 힘, 자연을 거스를 때의 재난이 무엇인가를 단단히 일깨웠다. 인간이 위대한 인공(人工)의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또한 자연을 거스를 때는 인간 그리고 인공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부르는가를 배우고 있다. 금년은 엘니뇨현상의 악화로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선진국 후진국, 남반구 북반구를 막론하고 전지구가 기상이변의 극심한 재난, 홍수 태풍 혹서 혹한 지진 해일 가뭄 산불등을 겪고 있다. 중국은 지금 양쯔강 홍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중국의 지리적 중앙(남북으로 베이징(北京)광저우(廣州), 동서로 상하이(上海)충칭(重慶)의 중앙)인 우한(武漢)은 지금 침몰직전에 있다. 개화 근대화 공업화의 시설과 동원 관리능력으로도 인류 최고문명인 중국 「역사」이래 거듭된 양쯔강 홍수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62년 11월 인도 의회에서 연설하는 자와하를랄 네루 수상의 옷깃에 달린 빨간 장미송이에 시(詩)적인 감동을 받고 인도북부 찬디가르에서 200만㎾가 넘는 거대한 수력발전소를 「현대의 사원(Modern Temple)」이라 명명한 네루의 근대화 의지에 심복했었다. 그러나 힌두교도인 네루가 콘크리트댐을 현대의 사원이라 부른 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설득력이 있었으나 좀더 보편적인 자로 재보면 옳은 판단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근대산업문명에서 사원일 만큼 댐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으나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고 인간이 신의 사원을 만들 수 있다는 의지까지 보는 듯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대의 사원」에서 미래를 얻기보다는 자연을 거스른 산업화를 반성하고 인류 최초로 대기온난화 요인을 예방해 보자는 「기후변화협약」의 세계적 환경노력을 더 기대할 만하다. 자연의 섭리를 올바로 믿는 것은 바로 자연을 거역했을 때의 재난 재앙을 믿는 것이요, 거역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한 외경으로 나타난다. 오늘의 재앙을 일으킨 엘니뇨 악화가 바로 지난 500년간 인간의 시대, 인간의 우월시대, 인간의 「무한한」 소비와 개발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대, 인간의 자연「정복」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한 시대의 관성이 빚어 낸 결과라는 이성과 양심의 성찰이 필요하다. 자연을 무의식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인간은 영감과 동시에 이성과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에 의한 판단과 양심에 의한 반성참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엘니뇨가 페루 플로리다 자바 파푸아뉴기니 양쯔강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 내 형제 내 이웃을 파괴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엘니뇨의 악화가 바로 우리들의 일상의 행위 즉 에너지와 물 낭비, 소비과시, 큰 것 많은 것 자랑하고 부러워하고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기,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개발하고 자연 파괴하는 행위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반성하자.
그럼에도 이 땅의 대학과 언론이 진실에의 외경(畏敬)을 멀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성적 판단과 양심의 참회를 촉구하지도 않고 오히려 기피하고 있다. 자연의 위력을 믿듯이 우리는 운명론을 넘어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닦고 양심이 명하는 바 겸손과 참회를 강조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이 자연을 거역하고 이성과 양심을 거역하여 이 땅에 「정치 엘니뇨」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학과 언론이 채찍질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밑에 대중주의와 독선의 유혹이 강력히 대두하는 오늘의 현상은 바로 국정 지도자들이 만드는 정치 엘니뇨이다. 노사정(勞使政)위원회에서, 부실금융 기업정리와 그리고 빅딜과정에서, IMF와 월스트리트 협상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의 진실이 밝혀지면 정말 어찌하려는지. 자연과 진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고 있다. 지성과 언론은 끊임없이 정치지도자들의 이성과 양심을 일깨워야 한다. 그것이 지성과 언론의 자연이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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