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고속도로 컨테이너 등서 한밤중에 만들어/호출기로 1대1거래… ‘길보드’ 상당수가 기업형 체인/레코드점·백화점까지 진출 점점 조직화·지능화불법 음반, 불법 서적의 제작유통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조직적지능적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복제장소를 수시로 옮기며, 낮에는 쉬고 밤이나 새벽에만 활동하기도 한다. 마스터릴 녹음기, 라벨인쇄기, 고속 복사기 등 복제기기도 일본 등에서 수입, 갈수록 진짜와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영상음반협회에 따르면 불법음반 제작자는 지하실, 독립가옥, 비닐하우스 등에서 음반을 대량 복제, 창고에 일시 보관한 뒤 밤 또는 새벽에 도매상에 넘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고속도로로 녹음시설을 갖춘 컨테이너를 끌고나가 음반을 찍거나 바다위의 배안에서까지 작업을 한다. 특히 이들은 수시로 위치를 이동해 현장을 추적하기가 매우 힘들다. 심지어 음반업체로 공식 등록된 회사의 공장에서 불법음반이 제작된 사례도 있다.
판매도 1대1방식의 철저한 점조직으로 이뤄져 뿌리를 캐내기가 쉽지않다. 무수한 사슬이 얽히고 설켜 누가 처음이고 중간이고 마지막인지 구별해내기가 어렵다. 이들은 서로 호출기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판매방법도 자동차로 전국의 도·산매상들을 돌며 현장에서 현금거래를 한다. 늘 처음 보는 사람이고 돈과 상품을 주고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법음반 유통의 온상인 길보드(길거리 빌보드·리어카)의 상당수가 생계를 잇기위한 영세 노점상이 아닌 기업화된 체인망이라는 점. 리어카 상인들은 대부분 하루 3만∼5만원을 받는 일당제 고용인들이고 그 뒤를 캐보면 좌판 10여개를 소유한 오너들이 버티고 있다. 목좋은 자리 몇개만 확보하면 고급 승용차 타고 수금 다니는게 보통이다.
판매통로도 길보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아예 일반 레코드점이나 백화점까지 비집고 들었다. 레코드가게에서도 불법인줄은 알지만 정품보다 이익이 많이 남는 가짜를 진열해놓고 팔기 시작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정비품」은 음반재킷이나 인쇄효과가 진짜를 그대로 빼다박은 음반이다. 첨단 장비를 동원한 홀로그램 위조부착 등 수법도 갈수록 다양화하고 있다. 정비품이 본사로 반품되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리어카나 일반 레코드점이외에 암조직을 통해 다방 레스토랑 등에서 직접 주문을 받아 납품하는 판매상도 등장했다.
불법 음반이 리어카뿐만 아니라 시중 백화점이나 일반 레코드점에서도 버젓이 팔리는 것과 달리 불법 서적은 대학가 등 특정 지역에서 주로 제작, 유통된다.
과거에는 서적의 일정부분만 복사하는 부분복사가 유행이었으나 이제는 책한권 전체를 인쇄해 표지까지 덧씌워 판매한다. 학생들이 과별로 교재 1∼2권을 사 단체복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내 복사실은 특히 치외법권 지역처럼 무단 복사를 자유자재로 한다. 대학가 복사점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밤에 영업, 새벽에 납품해 현장증거물을 없앤다.
출판문화협회 고흥식 차장은 『학생 개개인으로부터 주문을 받지 않고 아예 단과대나 학과 대표와 대량 복사계약을 맺고 납품하는 경우도 많다』며 『무단복사가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고 개탄했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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