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서 잘 나가던 증권맨 폐지수거 쓰레기장으로/석사는 학습지교사 “건강한 노동의식이 중요”90∼92년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했던 조성욱(34·가명·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씨는 요즘 다시 여의도로 출근하고 있다. 도착시각은 새벽 5시30분.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그가 하는 일은 사무실에서 나온 폐지를 수거하는 일이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부랴부랴 폐지를 트럭에 싣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수거장에 도착하면 오전 8∼9시. 종이쓰레기더미에서 신문지 박스 폐지등을 분류해 내는 그의 솜씨는 이 일을 오래 한 사람처럼 능숙하다.
땀과 쓰레기냄새가 범벅이 된 그가 명문대 법대출신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고물상 중에서는 학력이 제일 높을 것』이라고 웃는다. 92년 당시 대졸초봉이 가장 높았던 증권회사를 그만 둔 것은 평소 하고 싶었던 목수가 되기 위해서였다. 친구와 동업으로 소규모 가구공장을 차렸지만 불경기 때문에 2년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재취업한 중소기업이 지난 해 폐업, 잠깐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던 그는 제지공장 운전사로 일하는 군대 친구의 소개로 올 초 이 일을 시작했다. IMF이후 유례없는 고실업사태가 선택을 강요한 셈이지만 그에게 자괴감 따위는 없다. 『1주일에 10군데정도 빌딩을 돌면 한 달 100만원 수입은 올릴 수 있다. 땀흘린 만큼 수입이 나오고 오후 3∼4시면 일이 끝나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아 좋다』고 말한다. 역시 명문대 출신으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는 『쓸 만큼 벌어오고 집 안 일을 많이 도와줘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재취업이 별따기만큼 어려운 요즘 김씨의 사례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외국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학습지교사로 일하거나 대학원졸업자가 보험, 자동차영업을 하는등 하향취업은 노동시장 전체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서울대 이재열(사회학) 교수는 『최근 구조조정에서 대규모로 실직한 층이 대졸이상 고학력자이지만 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종은 단순생산근로직이나 영업직정도이다. 어쩔 수 없이 학력을 낮춰 취업하는등 「일 짝짓기(jobmatching)」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한다. 노동부산하 중앙고용정보관리소 집계에 따르면 2·4분기 실업자 가운데 가장 많은 층이 고졸자(40.6%)와 대졸자(17.2%). 한국노동연구원 어수봉 연구원은 『대졸자들이 단순사무직 일용직등 고졸자의 일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들의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마지 못해 몸을 낮춘 많은 사람들이 조씨처럼 건강하게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실업자를 대상으로 5월부터 실시하는 일당 2만∼2만5,000원의 공공근로사업에는 1만여명이 신청했지만 아예 나오지 않거나 중도에 탈락한 숫자가 30%에 달했다.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연구원은 『아직까지 3D업종이 구인난을 겪는 것은 직업귀천의식 때문이다. 고학력자들은 실직기간이 길지 않은데다 퇴직금이나 자산이 있어 구직활동에 소극적인 점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 사회도 직업에 대한 편견이나 학력숭배를 버리고 생활을 위해 노동을 선택하고 그 일을 즐기는 쪽으로 직업관이 선진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동선 기자>김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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