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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홍수­대피소의 밤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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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홍수­대피소의 밤 표정

입력
1998.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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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 “하늘아! 어쩌란 말이냐”/엎친 경제에 덮친 水災 삶의 터전 잃고 긴 탄식…/젖은 옷에 맨몸 대피 마루바닥서 ‘잠못 이룬 밤’『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잠이 오지 않아요』

이번 서울과 경기지역의 기습호우로 삶의터전을 유린당한 이재민은 1만3,000여가구에 총 5만여명. 이들중 상당수는 6일 시청과 동사무소, 인근 학교 등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서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으로 밤을 새웠으며, 물이 빠진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수마가 온통 휘저어 놓은 집 안팎을 참담한 심정으로 둘러보며 일손을 잡지 못했다.

경기 동두천시청 2층 회의실과 동사무소에 마련된 임시수용소에는 당초 1,700여명의 수재민들이 수용됐다가 오후 비가 그치면서 노약자 500여명만이 남아 무더위와 싸우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재해대책본부가 마련된 시청 3층에는 냉방기가 가동됐지만 아래층 임시대피소에는 선풍기 한대도 없어 이재민들의 표정은 더 어두웠다.

박병엽(46·회사원)씨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당분간 이곳에 있어야 할 것같다』며 『대책본부에서 선풍기라도 나눠 주어야한다』고 원망했다.

조순이(趙順以·56·여)씨는 『오늘 낮에는 시청식당에서 배달해온 점심으로 간신히 허기를 때웠다』며 『마실 물이라도 제때 공급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적십자사와 함께 라면과 담요 등 구호물품을 마련, 임시 대피소의 주민들에게 전달하며 위로했다.

경기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변 수재민 120여명이 수용된 봉일천중학교 교실에서는 집과 농토를 모두 잃은 이종숙(38·여·파주시 조리면 죽원리)씨가 자녀 3명을 일산신도시 동생집으로 보내고 혼자 덩그라니 남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 파고를 간신히 넘겨 오며 일주일 뒤면 탐스럽게 자랄 상추 등 채소(1,800여평)를 수확, 빚을 갚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지만 이번 수해로 물거품이 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동안 해오던 화훼농사가 IMF사태이후 경쟁력이 없어지자 걷어 치우고 어렵사리 농사를 시작했는데 마지막 남은 1억여원 어치의 채소와 농기계, 그리고 집을 수마가 모두 삼켜버린 것.

『5분만 늦었더도 일가족이 수몰당할 뻔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던 이씨는 구사일생의 기쁨도 뒤로 한채 모두 다 잃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강화초등학교 강화교회 노인회관 돌성마을회관 등 4곳의 이재민대피소에서는 오후부터 대부분 주민들이 귀가, 15가구 50여명 주민들만이 휴식을 취하며 밤을 지냈다.

그러나 이들 대피소에는 구급약품과 식량 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일부 주민들은 군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중랑천 범람으로 새벽부터 인근 학교등으로 대피했던 서울 도봉, 노원, 중랑, 동대문구 주민 3,000여명도 오후 늦게 물이 빠진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녘 갑자기 몰려온 수마를 피해 서울 노원구 공릉동 공원초등학교로 몸을 피했던 정은교(31·공릉3동)씨는 오후늦게 물이 빠진 집으로 돌아와 흙탕물이 가득찬 신혼방을 발견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3월 늦장가를 든 정씨는 『IMF가 닥쳐 어렵게 마련한 반지하 신혼방이 하루 아침에 쓰레기더미로 변해버렸다』며 오후들어 간간이 가는 빗줄기를 뿌리는 하늘을 원망했다.

중랑천의 역류로 인근 초등학교 등에 대피했던 중랑구 노원구 도봉구 주민들은 오후들어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와 이날 밤 늦게까지 구청직원들과 함께 양수기 등을 동원, 복구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 전기와 통신이 끊긴데다 구조반마저 늦게 출동해 애를 태웠다.<송원영·윤순환·이주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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