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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권오길의 생물이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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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권오길의 생물이야기:14)

입력
1998.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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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따로 없어도 온몸 감각세포로 밝고 어두움 구별비 온 다음날에는 지렁이가 유난히 많다. 이런 날 시골에선 닭장문을 열어 닭에게 오랜만에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를 준다. 사실 지렁이는 수재민이 되어 땅 속 집을 떠나 피난온 것이 아닌가. 지렁이는 피부(살갗)로 호흡하는데 집에 물이 차니 숨이 막혀 마당으로 피신왔다가 목숨까지 잃는 것이다.

지렁이가 움츠리는 것은 앞으로 나가기 위한 행동이다. 지렁이같은 생물이 굼실거리는 것을 꿈틀(연동)운동이라 한다. 구렁이 우렁이처럼 지렁이도 징그럽게 생겼다 해서 「렁이」라는 말이 붙은 것같다.

지렁이는 모래땅에선 먹을 게 없어 살지 못한다. 낙엽 지푸라기등 유기물이 많은 곳에서만 산다. 지렁이 분비물은 땅을 더욱 걸게 한다. 또 먹이를 찾고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헤치면 구멍이 숭숭 뚫려 산소 공급이 잘 되기 때문에 정원수나 작물이 잘 자란다. 한 마디로 비료공장이요 흙의 허파인 셈이다.

지렁이는 눈이 없어도 온 몸에 퍼져 있는 감각세포로 밝고 어둠을 알아차린다. 새끼일 때는 앞뒤 구별이 어렵지만 크면서 몸통 앞쪽에 목도리(환대·굵은 띠)가 생겨 머리와 꼬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목도리가 있는 쪽이 머리다. 지렁이는 자웅동체지만 다른 놈과 교미해 알을 낳는다.

지렁이는 토룡탕에만 이용되는 게 아니다. 말린뒤 가루로 만들어 기아퇴치용 식품으로도 쓴다. 또 지렁이 피에서 혈액응고(혈전증) 방지물질을 뽑아 약의 원료로 사용하는등 여러 방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지렁이를 못 보고 크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쇠귀에 경읽는 꼴이다. 지렁이와 놀게 하는 것이 장난감이나 피자를 사주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어린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자.<강원대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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