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든 아내를 입원시키면서 자신은 관용차를 타고가고 아내는 시내버스를 타고가게 했다는 한 법관이 자유당 시절 법조계의 화제였다. 아내는 민간인이니 관용차를 타서는 안된다는 결벽주의자 김홍섭(金洪燮) 판사의 일화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정당한 보수 이외에는 어떤 이득도 탐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리가 바뀔 각오로 일하는 것을 법관의 좌우명으로 실천해온 그는 물들인 작업복에 운동화 차림으로도 유명했다.■두루마기에 흰고무신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가인 김병로(街人 金炳魯) 선생도 청빈과 원칙주의로 유명했다. 대법원장 시절 그는 며느리 부탁으로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손자의 합격여부를 알아보려고 학교에 갔다온 비서관을 호되게 꾸짖었다. 근무시간에 사사로운 일을 한 「죄」를 나무란 것이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두 토막으로 나눠 피웠고, 집에서는 신문지를 잘라 화장지로 썼다. 몸에 밴 절약정신의 실천이었다.
■이에 비하면 요즈음 법조인 사회의 화제도 많이 변했다. 의정부 이순호변호사의 형사사건 싹쓸이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의정부지원 판사 두 사람이 「대쪽판사」라는 화제기사가 신문에 났었다. 두 사람은 이변호사가 제공하는 명절떡값은 물론, 판사실 운영비(실비)도 받지 않았고, 향응유혹을 받을 때마다 웃으며 물리쳤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 화제가 됐다고 법조계가 맑지 못한 반증으로 믿고 싶지는 않다.
■새 대법관으로 임명제청된 조무제(趙武濟) 부산지법원장의 얘기는 우리 법조계에 선비정신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실시된 93년 6,000여만원을 신고해 「꼴찌」를 했던 그의 청렴은 선배들과 비교해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판공비를 총무과장에게 맡겨두고 공무에만 쓰도록 했다니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청량제처럼 들린다. 향토법관이 대법관으로 처음 제청된 것도 기분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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