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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와 수치의 역사/한스 페터 뒤르/부시맨도 벗으면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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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와 수치의 역사/한스 페터 뒤르/부시맨도 벗으면 창피하다

입력
1998.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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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중세목욕탕 등 통해/시대·문명과 무관한 수치심 증명/서구의 문화우월주의 공격나체 섹스 배설등 인간이 동물적 혹은 생리적 행태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문명의 발전정도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서구문명이론은 분명히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문명이 열등할수록, 또 「미개인」일수록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문명의 발달이 수치심을 자극해 「문화인」으로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명은 물론 서구문명을 의미한다. 서구는 이같은 주장을 이론화해 서구문명의 「미개문명」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했다. 서구의 제국주의는 미개인을 개화시키는 시혜적 행위였던 것이다. 그같은 거만한 관념에 의한 지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의 문화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한스 페터 뒤르(독일 브레멘대 교수)의 「나체와 수치의 역사」(까치)는 이같은 서구문명이론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대와 민족, 문명에 상관없이 인간이 자신의 「동물적 행태」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증명한다. 고대 그리스신화에서부터 중세의 목욕탕기록, 현대의 나체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뒤져 열거한 사례는 놀랄 만큼 구체적이다.

배가 난파당해 의식을 잃고 파이아키아 섬에 다다른 오디세우스는 제일 먼저 나뭇가지를 꺾어 성기를 가렸다. 또 시신을 발가벗겨 마을에 공시하자 유행병처럼 돌던 고대 그리스 여성들의 자살행위가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 아버지나 장인 동서 심지어는 형제들끼리의 목욕도 허용하지 않은 중세의 풍경, 사형집행과정에서 여죄수의 치부를 보이게 했다고 사형집행자를 사형에 처한 유럽의 사례, 성기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목욕할 때도 그 부위를 잘 닦지 않았던 근대 영국여성들….

저자는 또 「문명국」에서 조롱의 눈길로 보았던 일본과 러시아, 스칸디나비아의 특이한 혼욕문화, 어린 사내아이라도 부인이나 처녀의 음부를 쳐다보면 처벌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풍습, 결코 아랫도리를 쳐다보지 않는 현대 미국 나체주의자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같은 사례들은 「문명인」들이 보기에 수치심을 모르는 것같은 「미개인」들이 오히려 고도의 예절과 강력한 자제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나체에 대해 문명과 관계없이 본능적으로 부끄러워 한다. 그리고 최소한 지난 4만년 역사에서는 야만인도 자연인도 원시인도 미개인도 없었다』.<김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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