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재보선에서 여당이 졌다. 지난번 지방선거때와는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인가. 이 변화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이는 국민들의 기억에 시효(時效)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난은 분명히 지난 정권이 저지른 잘못 때문이고 현 정부는 그 뒷수습에 땀을 흘리고 있지만 그렇게 전후사리(前後事理)를 따져 이해하고 참아주는 데는 시효가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반년이 지나고 보니 그 시효가 지난 것이다. 이제 고통스러운 불황과 실업의 현장은 그것을 유발한 정권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이를 기대만큼 풀지못하는 현 정권에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현 위기상황에 기대만큼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먼저 모든 개혁에 가장 앞서야할 정치와 정부의 개혁이 답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개혁은 순서상 기업이나 금융개혁에 선행해야 옳다. 그리고 개혁에 따른 비용이 거의 없어서 급진적 개혁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들 개혁은 거의 진전이 없고 민간부문에만 개혁을 채찍질하고 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는 정치가 개혁과 위기타개를 주도하기는 커녕 짜증나는 소모전으로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정권을 맡고 있는 여당은 그 인적자질과 의식구조, 행태면에서 개혁을 주도하는 수권정당으로서의 충분한 능력과 참신성을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여당 스스로 구태의연하고 개혁 의지도 미흡하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개혁도 같은 상황이다. 실업자가 150만명이라 하는데 그중에 공직자는 몇명이나 되는가. 기업마다 월급을 깎고 조직을 감량하는데 정부는 월급을 얼마나 깎고 조직을 어떻게 줄였는가. 어려움속에서 가장 무풍지대가 정부부문이라고 투표자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상황이 풀리기는커녕 더 깊게 꼬이고 있으며 여기에는 현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잘못했는가.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기업도산과 금융부실채권을 양산해 거의 모든 금융기관을 부실화하고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명을 낙제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수험생의 자질뿐아니라 커트라인을 몇점으로 할 것인가에도 달려있다. 초긴축·초고금리정책에 금융기관보유 유가증권의 평가손 100% 적립,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8% 유지등을 하루 아침에 몰아붙이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뻔한 일 아닌가. 만일 금융부실채권이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통제되었더라면 벌써 경제는 풀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IMF 협약때문에 어쩔수 없었다면 이것을 감당할만한 대책을 내놓아야 옳았다. 지난날처럼 8·3조치같은 것을 할 수는 없지만 그만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만 풀릴 일이다. 경제가 풀리지 않는 뇌관(雷管)은 120조원에 달하는 금융부실채권이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공채발행과 외채등을 최대한 활용하되 부족한 것은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당장 해결하고 그 대신 올해 15% 정도의 인플레를 받아들이자고 필자는 제안한 바 있다(본란 6월16, 30일자). 그런데 금융부실채권이 해결되기는 커녕 지금도 계속 쌓여만 가고 있지 않은가. 이 뇌관이 다스려지지 않고는 절대로 경제가 풀릴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정부의 개혁정책과 위기관리정책을 총점검해 미진한 부분은 과감하게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의 표심(票心)을 의식해 개혁을 후퇴시켜서는 안된다. 바그와티(J.Bhagwati)교수는 『선거표심은 개혁에 저항적』이라며 급진적 개혁일수록 표심에 영합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선거에 지더라도 우직하게 개혁을 밀고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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