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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的 창의력(金聖佑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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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的 창의력(金聖佑 에세이)

입력
1998.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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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정부에서는 50건의 기념사업을 발표했다. 반세기동안 역경 속에서 성장과 발전을 해 온 우리의 저력을 재확인하고, 국민 대화합으로 국민의 역량을 재집결하여 당면한 국가적 난국을 극복하면서, 21세기를 앞두고 제2의 건국을 위해 새로운 50년을 시작하는 새 출발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 기념사업의 방향이요 목표다.과연 50건의 사업들이 이 취지를 살리기에 넉넉한 것인가. 학술포럼과 각종 토론회를 열고 정부백서를 발간하고 기록영화를 제작한다고 한다. 각종 전시회와 음악축제 등도 갖는다. 태극기 사랑운동도 펼친다. 8·15 당일에는 축전행사들 외에 옛 서대문형무소의 역사관이 개관되고 3·1운동 기념탑이 제막된다.

기념사업들이 다양하기는 하다. 그러나 뚜렷한 표제사업이 없다. 목록중에는 민간단체들의 통상적인 자체행사들을 끌어넣은 것도 많다. 지방별 사업이란 것도 대개 음악회 정도가 고작이다. 우리 민족의 고난의 50년, 영광의 50년이 기껏 이 정도로밖에 위안받고 격려받을 수 없는 것이던가. 건국의 역량은 있어도 그 역량을 자축할 역량은 이 뿐인가.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하여 알찬 기념사업 위주로 꾸민 것이라고 한다. 건국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일수록, 50년의 성과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듯한 실의의 한복판일수록, 이럴때 온 국민의 기개를 펼치게 해야 한다. 나라 경제가 바닥이 나서 잔치를 벌일 형편이나 분위기가 못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모자라는 것이다.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때의 기념행사에서 배울 것이 있다. 그들은 다채로운 행사 외에도 뭔가를 기념으로 남긴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감옥 자리에 새로운 오페라극장이 신축되고 라데팡스에 제2의 개선문이 모뉴멘트로 세워지고 루브르박물관 앞뜰 지하에 또 하나의 루브르를 만들어 개관했다.

우리는 대한민국 50년의 업적을 표상할 어떤 조형물이나 건조물을 건립하는 것이 없다. 정부가 내놓은 50개 기념사업속에는 월드컵 주경기장 건립이 포함되어 있다. 이 경기장을 건국 50년의 상징성이 반영된 건축물로 건립한다는 것이다. 건국 50년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세워져야 할 건축물이요 그나마도 세울까 말까 망설이던 경기장이다. 그 경기장에 대한민국 50년을 감격 할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

3년전 광복 50주년을 맞았을 때도 나라는 아무 감회의 표지도 남기지 않았다. 서기 2000년이 다가온다는데, 나라마다 새로운 밀레니움을 맞을 기념물을 준비하느라 야단인데, 우리는 기척이 없다.

모뉴멘트는 할일없이 그냥 서 있는 무언의 장승이 아니다. 역사의 한 장(章)의 표제(標題)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한 나라의 기상을 상징한다. 상징의 의미를 경시해서는 안된다. 상징이 무의미하다면 왜 국기에 경례하고 국가를 제창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겠는가.

프랑스혁명 200주년 때에는 파리의 바스티유광장등 6곳의 큰 광장에서 야외무도회가 열렸다. 파리뿐 아니라 전국이 온통 무도장이었다. 우리의 8·15도 강강수월래와도 같은 대윤무가 전국 곳곳에서 손에 손을 잡고 춤추고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굳이 춤이 아니더라도 그런 국민대통합의 한마당이 아쉽다.

건국 50주년은 가뜩이나 구겨진 나라의 체면을 만방에 일신시킬 찬스다. 기념사업 중에는 이미 한번 다녀 온 뮤지컬 「명성황후」가 다시 미국을 순회하고 한국미술전이 유럽 두어군데서 열리는 것이 끼여있다. 그것만으로는 초라하다. 우리문화의 총량을 과시할 대표적 공연물이 제작되고 대대적인 전시회가 기획되어 지금쯤 세계를 순회하고 있어야 옳다.

정부가 마련한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은 정부측의 기념사업실무위원회가 계획을 수립하고 사회 각계분야 대표 28명이 참여한 기념사업위원회에서 심의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중지(衆智)를 모은다는 핑계의 각계 대표의 합석은 다분히 도식적인 것이요 정부의 면피용일 때가 많다. 번뜩이는 발상은 중구(衆口)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몇몇의 예지가 발견해 내는 것이다.

국민들에게는 창의력이 얼마든지 잠재해 있다. 이 국민의 창의력을 찾아내서 결집시킨 힘이 국가적 창의력이다. 무슨 기념사업의 수립뿐 아니라 모든 정책의 입안도 국가적 창의력에서 나온다. 국민의 힘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것이 정부의 어떤 정책보다도 우선하는 정책이라면 정부수립 50주년같은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창의력의 빈곤이다. 건국 50년의 기념사업은 현 정부 이전부터 장기적으로 기획되었어야 옳은 것이지만, 어느 정부든간에 우리는 머리 좋은 나라의 국민이고 싶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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