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추방전 한국책임론’ 펴 80분내내 입씨름/정부 유례없는 외교실패… 긴장 장기화 예고수습기미를 보이던 한 러간의 외교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한러간의 외교관 맞추방 사태로 빚어진 외교마찰을 수습하기 위해 26일 오후 마닐라에서 열린 박정수(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과 프리마코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회담은 러시아측의 강경자세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한국측은 당초 이번 회담에서 한러간의 외교갈등을 수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11월 말레이시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때 별도의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측이 기대와 달리 「스파이 스캔들」에 대한 한국책임론을 주장하며 강경론을 펴 결국 입씨름만 하다 회담장을 나서야 했다.
이날 회담에서 프리마코프장관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조성우(趙成禹) 참사관은 러시아외무부 고위관료를 금전으로 매수해 국가비밀을 빼내려 한 스파이로서 한국이 조참사관 추방을 이유로 올레그 아브람킨참사관을 맞추방한 것은 한국의 분명한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등 공세를 계속했다.
이에 박장관이 『러시아측의 대응도 문제가 있었다』고 맞받아치자 러시아측은 집요하게 「재발방지」등을 요구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예정된 45분을 35분이나 넘겨 지속된 회담은 얼굴만 붉힌 채 끝났다.
이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러시아의 외교적 지원을 추진하던 우리측의 외교전략은 유례없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러시아외교당국의 강경론을 예측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한 외교당국자의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회담 이전부터 외교관 추방사태를 보는 안기부와 외교당국의 시각 차가 너무 커 과연 외무장관회담에서 진전된 성과가 나올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가장 우려했던 결과가 나오고 만 셈이다. 안기부측은 이번 외교마찰에 대해 「러시아측의 사전 음모설」을 제기하며 외교통상부의 지나친 저자세 외교에 불만을 표출하는 등 국가안보와 밀접한 대러시아 외교에 불협화음을 나타냈었다.
양국장관이 이날 외교경로를 통해 회담에서 다루지 못한 의제들에 대한 추후 논의를 하기로 했으나, 이번 회담이 결렬됨으로써 우리측은 대러 경협차관 상환과 양국경제협력 문제 등 러시아와의 현안을 조기 해결하기 어렵게 되는 등 커다란 외교손실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특히 이번 회담은, 러시아측이 북한과의 고위 인사교류 활성화와 북한관련 정보제공 거부 등 「북한 지렛대 전술」을 내세워 우리측을 압박하는 외교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종합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교훈을 남겼다.<마닐라=윤승용 기자>마닐라=윤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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