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엎고 가축 굶기고 농가부채 18조7,000억/“어떡하란 말입니까”농어촌이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빈사 상태에 빠졌다. 환율폭락에 따른 사료, 비료, 농약 등 원료비의 폭등은 수많은 원예, 특작, 축산농가들의 파산을 불러왔다. 극도의 소비위축으로 인한 농수산물 가격의 폭락은 농어촌 경제를 회생불능의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축산농가는 사료비가 턱없이 오르자 가축사육을 포기, 멀쩡한 가축을 헐값에 투매하거나 굶겨 죽이기까지 하고 부채상환 압박을 견디다못한 시설재배농가의 폐업도 잇따르고 있다. 어민들은 출어해봐야 본전은 커녕 손해만 늘어나자 항구에 배를 묶어둔지 오래고, 양식 어민들은 사료값을 대지 못해 수천만마리의 치어를 생매장하고 있다.
농어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어려움은 각종 원자재비용 상승이다. 지난해 말에 비해 비료는 31.6%, 경운기 등 농기계류 8.3%, 비닐파이프 등 시설자재 20∼30%, 농약 33% 등으로 6∼7개월사이 대부분 두자리수 이상 올랐다. 20%이상 오른 사료는 현금없인 구할 수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한우를 비롯한 일부 농축산물 가격이 크게 하락, 농민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시설채소가격은 오이(20㎏ 기준)의 경우 지난해 말 3만7,580원에서 최근 3만2,500원으로, 풋고추(10㎏ 기준)는 3만4,660원에서 2만5,000원, 호박(10㎏ 기준)은 2만5,280원에서 2만1,500원으로 각각 떨어졌다. 이같은 가격하락세는 실업, 감봉 등으로 가계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과중한 농가부채도 농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농가부채는 90년 8조3,600억원, 95년 13조7,500억원, 작년 18조7,373억원으로 계속 증가, 90년이후 2배이상 늘었다. 농가 가구당 부채도 90년 473만4,000원, 95년 916만3,000원, 지난해 1,301만원으로 계속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농가의 사업포기도 확산되고 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농사를 지어온 주모씨는 1억여원의 농협 대출자금을 갚을 길 없어 야반도주, 연대보증을 선 이웃농민들이 무더기로 재산을 가압류당했다. 현재 지수면 암사리와 금곡리만해도 파산농가가 다섯농가로 이들의 총부채액은 6억여원에 달한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에서 물고기 양식을 하던 하모씨도 IMF이후 영농자금 상환독촉에 시달리다 최근 한밤중에 가족과 함께 몰래 고향을 떠났다. 경남 사천시 삼천포읍에서 논농사를 해온 김모씨는 9,000여만원의 부채를 갚을 길 없어 농사를 접어둔채 레미콘공장에 경비로 취직했다. 경상남도에서는 한달에 10여농가가 빚을 갚지 못해 잠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해 농림부 예산은 순수 사업비 기준으로 9,057억원이 삭감된데다 농지관리기금 720억원, 농안기금 514억원 등 각종 기금사업비도 대폭 축소돼 정부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농촌의 붕괴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농가파산상태가 잇따라 농촌은 회생불능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시름에 잠겨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가의 부채를 해결하는 것이 농업회생의 시작』이라며 모든 농가부채의 상환유예와 이자감면, 농축수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특단의 조처를 정부에 촉구했다.<남대희 기자>남대희>
◎전문가 기고/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유철호 부원장/생산자는 스스로 수급조절 앞장서고/농축산물 소비촉진 국민운동 절실/유통개선·담합금지 정부 단호한 개혁을
올해는 농업부문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 농가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농업에 있어서는 배합사료 가격과 유류가격이 상승해 축산과 시설원예부문 타격이 제일 컸다.
농업부문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경기침체로 농축산물에 대한 소비위축이다. 특히 육류소비가 크게 줄면서 축산농가들이 경영압박을 못견디어 젖소 송아지를 버리는 사례가 잇따르기도 했다. IMF이전부터 지속되던 산지소가격 하락은 정부 수매에도 불구하고 훨씬 심화해 왔다. 수매자금이 제한되어 이제는 가격을 안정시킬 만큼 수매를 계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때보다 생산자, 소비자, 정부의 협력이 긴요하다. 먼저 농가들은 소비가 주는 만큼 생산량을 조절, 농축산물을 제값 받고 팔아 안정적 소득을 얻는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상업농시대에 걸맞게 생산자 스스로 수급조절에 앞장서야 한다. 이는 정부의 경제운영기조인 시장경제원리에도 부합된다.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 협약에 따라 농산물가격 하락시 가격안정과 소득보전을 위하여 자금을 쓰는데 제약을 받고 있다.
다음으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합심하여 우리 농축산물 소비촉진에 나서야 한다. 한우 산지가격을 회복시키고 낙농가와 유업체의 경영안정을 위해 쇠고기 한근 더먹기, 우유 한컵 더마시기 등 전국민적 소비촉진운동이 필요하다. 이 운동에도 생산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미국 등 여러나라에서도 우리 농업이 당면하고 있는 농산물 소비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자금마련에 생산자들이 앞장을 서왔다. 이들 나라에서 주로 소비촉진을 위한 자금마련을 위하여 도입된 자조금 제도는 농민들이 자발적이고 자구적인 운동으로 시작됐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공정 거래질서가 확립되도록 유통관련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쇠고기의 경우 산지 가격은 크게 하락했는데도 소비자가격의 하락폭은 낮아 양축가들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크다. 가격담합 근절 등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하여 지속적인 단속과 제도개선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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