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50년, 다시 뛰는 한국인」이란 구호가 새삼 쳐다봐진다. 건국 50년동안 우리가 성취한 것이 많다. 자랑스러운 것을 얼마든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것도 있다. 처음부터 다시 뛰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 것이 선거다.가장 최근의 선거인 7·21 재·보선은 우리나라 선거사의 축쇄판이었다. 우리나라 선거의 모든 악습이 다 나타났다. 불법선거, 탈법선거, 타락선거, 혼탁선거의 악례들이 모조리 전시되었다. 금품살포, 향응제공, 흑색선전, 청중동원, 인신공격, 관권시비, 고소·고발사태 등등. 정부는 또 어김없이 어느 선거때나 마찬가지로 선거법위반자에 대한 「엄중처벌」을 엄포 놓았다.
정권이 처음으로 교체되고 온나라가 긴장과 긴축으로 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외쳐지는 때인데도 선거만은 열외에서 여전히 흙탕물놀이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실로 언제까지 우리의 선거는 이렇게 답보하겠다는 것인가. 50년의 경험도 모자란다면 앞으로 또 얼마만큼의 연조(年條)뒤라야 전진하겠다는 것인가.
정부가 수립되던 해의 제헌국회 선거 이래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대통령 직접선거 9회, 국회의원 총선거 15회, 지방자치단체선거 12회등 전국규모의 선거를 도합 36회나 치렀다. 3·15부정선거처럼 혁명의 도화선이 된 유혈의 희생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이라니 우리는 끝끝내 선거 하나도 할줄 모르는 민족일 것인가.
7·21 재·보선의 평균 40.1%라는 투표율 또한 기가막힌다. 수원 팔달구의 26.2%는 경악스럽다. 아무리 총선거가 아니라지만 이것은 선거의 모독이요 민주주의의 치욕이다.
건국이래 총선거의 투표율만 보더라도 초대인 1948년의 제헌국회때 95.5%였고 그 후로 이 기록을 깬 적이 없다. 그 이래 4대국회때까지는 90%대를 유지하다가 6대때부터는 70%대로 하강했고 지난 15대에서는 드디어 60%대(63.9%)로 추락했다. 다소의 기복은 있어도 대세는 내리막이다. 투표율이 반드시 어느 나라에서나 민주정치의 후진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총선거에 있어서의 꾸준한 하향추세는 선거의 후퇴다. 타락선거가 유권자들의 선거혐오증을 부추겨 투표율을 갉아먹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선거는 성장하지 않고 선거경시 풍조만 자라고 있다.
선거의 양상에 있어서도 제헌국회의 5·10선거때 「×××군을 국회로 보냅시다」라고 외치던 성능 나쁜 마이크 소리가 오히려 가장 깨끗한 목소리였다. 좌익세력의 방해공작이 시끄럽기는 했어도 부정한 선거운동은 없었다. 그때 신문들은 「투표로 참된 해방의 문을 열자」고 첫 선거의 의미를 고창했다. 그러나 그 이후 선거는 갈수록 자주독립한 나라의 민주발전을 좀먹어 왔다.
건국 50년의 정치사는 반독재투쟁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독재가 곧 민주주의인줄 알았다. 이제 반독재의 투사들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화가 성취되었다고들 한다. 선거가 아직도 요모양 요꼴인데 우리는 무슨 밀주(密酒)의 술잔으로 민주주의의 축배를 들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썩은 표를 거름으로 자라는 것이던가. 민주투쟁의 역사를 우리는 오독(誤讀)해왔다. 민주투쟁은 50년이 되도록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출발점이 틀려있으면 아무데도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건국 50년동안에 가장 발전하지 못한 것이 정치분야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것은 바로 선거의 미발전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선거수준이 곧 정치수준이다. 오염된 선거가 정치를 오염시킨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같은 선거풍토에서는 정치발전을 가져올만한 인망있는 인물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어렵다. 『민중의 투표에 의해 위대한 인물을 뽑을 수 있다면 그 이전에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있을 것이다』라는 독재자 히틀러의 야유가 우리나라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것이 된다.
선거악은 우리 사회의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오늘날과 같은 경제난이 정경유착 등 정치 때문에 멍든 것이라면 그 정치를 고치지 않고는 경제를 고칠 수 없고 정치를 고치자면 선거를 고쳐야 한다. 선거의 구조조정 없이는 모든 구조조정이 허사다.
이제 우리는 50년전 제헌국회때의 순수한 선거로 다시 돌아가자. 그때의 그 건국정신으로 선거를 첫선거처럼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발 하늘같이 맑은 선거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논설고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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