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비리를 수사해온 검찰은 아들의 병역특혜를 청탁하면서 병무청 모병연락관 원용수준위에게 뇌물을 준 부모 13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그들의 명단을 보면 정치인 기업인 의사 법조인 언론인에서 포장마차 주인까지 온갖 직업과 계층이 다 들어있다. 2년 남짓한 세월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것이 그토록 안쓰러워 수백·수천만원씩 돈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니 어이가 없다.지난달 국방부가 발표한 현역군인 133명을 합치면 이번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사람은 700명에 가깝다. 한총련 연세대 농성 같은 공안사건을 제외하면 일반사건으로는 전례가 없는 규모다. 원용수준위가 보관해 온 여러 권의 묵은 수첩에 적힌 청탁자 명단은 문제삼지 않고도 이 정도라니 비리가 얼마나 만연돼 있었는지 알만하다.
사건규모에 비해 정식 기소된 사람이 36명 뿐이라는 것은 유감이다. 뇌물 준 부모등 7명만 구속하고, 유사 브로커 노릇을 한 병무청 공무원들과 직업 브로커들을 불구속 기소한 것도 종전의 사건처리와 균형이 안맞는다. 전직 육군 참모총장과 3선의원 경력의 정치인, 현직 판사, 지방 신문사 전무 등은 돈 거래가 없는 「단순 청탁」이라는 이유로 불문에 부쳐졌다. 같은 사건에서 아들의 현역입대를 부탁했다는 이유로 현역 장성의 이름을 공개했던 지난달 국방부 조치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구속된 사람보다 많은 뇌물을 준 사람들의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됐다는 사실이다. 유명 기업체 대표, 대학병원 의사, 공인회계사 부인이 병역면제를 조건으로 준 돈은 900만∼1,200만원이다. 800만원을 준 혐의로 구속된 사람과 비교하면 너무 불공평하다. 법원은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초범이며,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기 때문』이라고 영장기각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한 법원에서 처리하면서 뇌물액수가 400만원이나 더 많은 사람을 구속하지 않은 이유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영장이 기각된 의사는 아들이 현역판정을 받자 진단서를 떼 세번이나 신검을 다시 받게 했으며, 뇌물로 준 1,200만원을 재건축 비용으로 지출한 것처럼 조작해 정상을 참작받을 여지가 없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초범이라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것도 궁색하게 들린다.
법원은 이런 불공정성에 대해서 해명해야 한다. 지금 법조 주변에는 세 사람의 영장기각에 대해 여러가지 억측이 나돌고 있다. 분명한 해명이 없으면 억측은 사실로 굳어져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병무비리 사건에 실망했던 국민은 이 사건의 처리를 보며 다시 실망하고 있다. 납득할만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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