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選 불구 ‘경제 문외한’/외무·총무청·관방장관 역임/원만한 성품에 골프 즐겨「사람 좋은 오부치」 「온후한 성품과 두터운 인망」. 24일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승리, 30일의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될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61) 외무장관을 두고 일본 언론들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거론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조직의 숨은 관리자로는 알맞지만 일본을 끌어 나갈 결단력은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담겨 있다. 외신들은 그를 「미스터 오디너리(Mr.Ordinary)」, 또는 「옵티미스트(Obtimist, Obuchi와 Optimist의 합성어)라고 표현했다. 보통 사람, 천성만 좋은 사람이라는 부정적 평가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의외의 적극성을 발휘해 온 경력대로 이번 경선에서 집요한 득표 작업으로 승리자가 됐다.
1937년 군마(群馬)현에서 태어난 그는 와세다(早稻田)대학 문학부(영문학 전공) 시절부터 중의원 재선 직후 급서한 아버지 고헤이(光平)의 뒤를 이을 결심을 했다. 와세다웅변회에서 정치 연설을 익히는 등 준비를 거쳐 대학원생 시절인 1963년 26세의 나이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와 나란히 최연소 당선, 화려하게 정계에 데뷰했다. 2세 의원으로서 평탄한 길을 걸어온 것만은 아니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총리와 같은 선거구에서 힘겹게 12선을 이루어 「양대 산맥의 틈에 낀 계곡에서 핀 백합」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실력」은 일찌감치 눈에 띄었고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총리의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다케시타파를 오랫동안 관리해 왔다. 91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에 이어 당간사장에 취임, 유연한 당관리로 「철권」의 오자와와 대조를 이루었다. 92년 「오자와 포위」에 성공, 오자와와 하타 쓰토무(羽田孜) 전총리를 몰아내고 파벌을 계승, 「헤이세이(平成) 정치연구회」(오자와파)를 이끌면서 리더로 부상했다. 94년 자민당 부총재가 돼 유력한 총리 후보가 됐으나 하시모토 총리에 길을 내 주었다.
그는 총무청 장관, 관방장관 등을 역임했지만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바 없어 해외로부터 「경제 문외한」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이번 경선에서 시장(市場)은 그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냈다.
그는 대학 시절 영문학도로 셰익스피어 연구를 했다. 대학원 시절 혼자서 8개월동안 47개국을 무전여행했다고 한다. 부인 지즈코(千鶴子·57)와 1남 2녀. 골프와 합기도(4단)를 즐기며 「시종일관 성의있게」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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