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앞날/불황따른 국민불만 의식/금융·세제개혁 고삐죌듯/불황 골깊어 성과미지수오부치 선장이 이끄는 「일본 주식회사」의 장래는 극히 불투명하다. 일본이 맞은 불황의 골이 워낙 깊기 때문이다.
자민당 총재 경선을 앞두고 도쿄(東京)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서는 한동안 「가지야마 장세」라는 말이 나돌았다. 올 들어 금융기관 불량채권 처리 등 경제 문제에 대해 활발히 언급해 온 당내 경선자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관방장관에 대한 기대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무장관에 대한 불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부치장관의 우세가 굳어진 후에도 시장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가 23일 일본국채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방침이라고 결과적으로 오부치장관을 겨냥한 「폭탄」을 던졌지만 엔화는 달러당 1엔 정도 떨어지는 데 그쳤다.
예상외의 안정에 대해 전문가들은 「오부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민당의 변화를 기대하던 측은 「오부치 체제」에 실망하고 있으나 「어차피 경제 회생책이 다 나와있는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실행력」이라는 시각도 힘을 얻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시장은 오부치 정권의 정책 속도를 관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이런 점에서 오부치 정권은 경제 불안의 뿌리인 금융기관 부실채권 정리와 소득세·주민세의 「영구 감면」과 법인세 인하 등 세제개혁을 서둘지 않을 수 없다. 「가교은행(브리지 뱅크)」을 통한 부실채권 정리는 이르면 30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될 전망이다.
경선 과정에서 오부치 장관은 16조엔 규모의 종합경제대책에 이은 추경예산 편성을 약속했다. 그의 경제정책이 구조개혁보다는 소비 심리 자극에 무게를 둘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행히 5월 이래 국민가계의 소비 심리는 조금씩 풀리고 있다. 경제기획청은 10월께면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리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의 약속이기도 한 「아시아 경제 회복 지원」도 일본 내수 시장의 회복이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일단은 기대할 만하다.
◎정치·외교전망/고른지지로 黨결속 성과/여론냉담·野 공세엔 부담/美·中·러 관계유지 낙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자민당 총재 당선자는 총재경선에서 「거당 정치」를 강조해 왔다. 자민당의 힘을 결집, 12일 참의원 선거 참패로 빚어진 당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는 뜻이다.
24일 경선에서 그는 일단 자민당의 힘을 끌어 모은다는 목표의 절반은 이룬 셈이 됐다. 그가 이끄는 오부치파는 물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성 장관을 내세운 미쓰즈카(三塚)파를 제외한 미야자와(宮澤)파, 구와타나베(渡邊)파, 구고모토(河本)파 등 자민당내 전파벌의 고른 지지를 끌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경선 과정에서 반기를 들었던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관방장관 세력과 소장파 세력을 감싸 안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으나 무엇보다 화합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으로 보아 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당내 세력 기반이 취약, 겉모습과는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와는 다른 「실세 총리」로서의 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장 큰 부담은 당론과 크게 동떨어진 싸늘한 여론. 줄곧 언론의 혹평을 받았고 인기는 바닥을 맴돌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민주당 등의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 공세는 한결 거세질 전망이다.
반면 외교면에서는 그는 이미 상당한 성공을 예약해 놓았다. 외무장관으로서 대미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많은 진전을 이룬 경험을 그대로 이을 수 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중요한 성과가 기대되는 미일·중일정상 외교가 잇따를 전망이다.
한편 이번 총재 경선 결과가 자민당의 세대교체를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무성하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간사장,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정조 회장, 낙선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성 장관 등 이른바 「YKK」그룹이 노장그룹을 제치고 당내 주도세력으로 부상했다.
◎한·일 관계/‘실세’ 등장 對韓정책 유연 예고
한국 정부에 있어서 「오부치호 일본」은 「하시모토호 일본」보다는 나은 대화 상대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실세 총리가 갖는 안정감이 양국의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유족회 회장 출신으로 역사문제 등과 관련, 우익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와는 다른 중도 노선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일본 보수파의 정맥을 이어 왔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으리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자민당내 노장파 강경 보수세력을 대표한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관방장관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의미는 커진다. 그를 지원한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간사장과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정조 회장 등 자민당 「차세대」의 힘이 커진 것도 보다 나은 양국관계를 점치게 한다.
한일 양국 관계는 지금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 오부치 내각이 대일 관계 개선을 내건 바 있는 한국 정부에 어떻게 화답할 지가 관건이다. 양국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0월초 방일을 앞두고 어업협정, 경제 지원, 무역 역조 시정, 일본 대중문화 개방, 과거사 문제 등 주요 현안의 큰 가닥은 잡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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