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들어 두번째 추경예산을 편성함으로써 올해 총 세출예산은 80조원을 넘어섰다. 여러가지 의욕에 찬 사업들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막대한 예산으로 대형사업을 벌인다든지 특정분야를 지원하기위해 많은 자금을 푼다고 하면 왠지 겁부터 덜컥난다. 절박하게 해결해야할 실업자를 구제하기위해 8조원이 넘는 돈을 배정한다 해도 반갑기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썩어가는 팔당 식수원을 살리기위해 정화시설을 대거 건설한다해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부가 돈을 쓴다고 하면 두렵다.재정지출은 경제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효율적인 경제, 탄탄한 국가경쟁력, 부의 균등한 분배, 풍요로운 삶의 질등 우리가 바라는 모든 목표들이 재정지출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재정지출이 경제에 힘과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수가 아니라 밑빠진 독과 같은 낭비와 비효율의 블랙홀이 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를 불안케하는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끝에 12조원을 들여 2006년에야 서울부산구간(대구부산은 기존철도 이용)을 지금의 새마을열차보다 그다지 빠르지않은 속도(시속 150㎞ 정도)로 달리게 된 경부고속철도 사업. 그 악몽이 채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인천국제공항이 그 전철을 되풀이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초 3조4,000억원에서 7조5,000억으로 배이상 불어난 사업비, 2000년으로 늦춰진 개항시기는 눈감고 넘어가더라도 완공이후가 더 걱정이다. 이미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등에 동아시아 전역을 겨냥한 대형 국제공항이 문을 열거나 우리보다 앞서 완공될 예정이어서 뒤늦게 연착개항하는 인천공항이 손님을 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엄청난 예산을 낭비한채 파리만 날리게되지는 않을까. 751억원이나 들여 지었지만 1년이 넘도록 이용승객이 1만명을 넘지못해 투자회수는 커녕 연간 50억원이 넘는 운영적자를 추가하고 있는 청주국제공항의 확대판이 될 것같아 벌써부터 불안하다.
대규모 간척사업에서도 시화호가 5,000억원의 공사비를 날린채 다시 메워야하는 진퇴양난에 빠진데 이어 6,000억이 투자되고 2조3,000억원이 더 들어갈 새만금사업도 이미 담수호가 농업용수로 쓸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오염돼 시화호의 운명을 반복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이 예산만 낭비한 대표적 사례중 하나가 농어촌구조조정이다. 정부는 쌀등 농산물수입개방에 따른 국내 농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며 이 사업에 지난 5년간 42조원을 집중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 자금은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농민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갔다고 한다. 한 정부인사가 이에대해 『천문학적 돈이 지방유지들에게 갔다. 효과는 없었고 국가예산만 갈라먹은 셈이다』고 했다니 그 난맥상이 짐작이 간다. 이제 막 풀려나가고 있는 실업예산은 그렇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그 심각성을 따진다면 결코 환란에 뒤지지않을 이 엄청난 부실과 낭비에 대해서는 원인도 규명이 되지않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넘어갔다.
온 국민이 이미 졸라맨 허리띠를 다시 조르고, 기업들이 한번 경비를 줄이고 줄여 내핍을 하면 무엇하는가. 정치인의 한건주의에 의해, 관료들의 무지와 무책임, 공기업의 마구잡이 사업벌리기와 부패때문에 조(兆)단위의 예산들이 여기저기서 낭비되고 있는데….
공공분야의 비효율과 부패부터 개혁하고 투명한 재정지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하는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정부가 쓰는 예산은 경제위기속에서 국민과 기업이 뼈를 깍는 고통을 참아가며 한푼 두푼을 아껴 마련해낸 말 그대로 혈세(血稅)이다. 부탁컨데 재정을 담당하는 공직자들은 지출에 앞서 그 돈에 담긴 국민의 피와 눈물을 새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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