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풀면 물가가 오른다. 인플레는 고통스럽고 위험하다. 따라서 통화증발은 나쁜 것이다」이른바 중앙은행의 삼단논법이다. 통화가치를 안정시켜 인플레를 억제해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선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중앙은행다움」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예외가 용납되지 않는 「신앙」 인양 한은은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은 얘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산업기반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는 현 신용경색에 대해 한은은 최근 다음과 같은 공식진단을 내렸다. 「인플레를 수반하는 통화증발은 해결책이 아니다. 설령 돈을 풀어도 은행들의 대출기피로 돈이 돌지 않는다. 유일한 신용경색해법은 구조조정을 조기완결하는 것 뿐이다」
틀린 대목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돈을 풀든 안풀든 결과는 똑같다」 「구조조정이 끝날 때까지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돈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더라도 통화정책 최고결정기관의 진단과 처방치고는 너무도 실망스럽다.
지금이 위기인 것은 늘 하던 대로, 주어진 대로만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한은은 변화된 상황을 못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지. 인플레 위험도 기업이 살고 경제가 움직인 뒤에야 있는 것이다. 돈을 풀고 조이는 것만 자신들의 영역이고 돈이 돌고 안돌고는 별개라는 「울타리치기 발상」으론 IMF 위기시대를 넘을 수 없다.
한은은 중앙은행의 고유가치와 낡은 타성(새로운 정책개발능력부재)을 착각하고 있다. 위기상황 동안만이라도 한은은 중앙은행 교과서를 덮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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