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황주리 ‘식물학’(사연이 있는 그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황주리 ‘식물학’(사연이 있는 그림)

입력
1998.07.21 00:00
0 0

◎生前 부친이 가꾸던 나무에 어느날 잎돋고 환한 등불이89년 타계한 황준성(黃俊性)씨는 미술계에서 양화가 황주리(黃珠里·41)씨의 아버지로 뿐 아니라 컬렉터로도 유명하다. 51년부터 74년까지 월간지 「신태양」을 발행했던 황씨는 잡지표지화를 그린 작가들로부터 작품을 구입했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림 파는 게 워낙 어렵던 시대였던지라 황씨의 배려는 고마운 것이었다.

작가 황주리씨에게 아버지의 기억은 더욱 남다르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80년부터 국전(86년 미술대전으로 바뀜)에 계속 출품했지만 줄곧 낙방, 상심에 빠진 그에게 아버지는 『너는 꼭 크게 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89년 초 간암선고를 받고 열흘만에 세상을 떴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을 하던 황씨는 임종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소식에 황씨는 충격을 받았지만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런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이 「식물학」. 황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이크식 화면에 인간군상이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돼 있다. 화제(畵題)가 떠오른 것은 아버지가 일궈놓은 경기 고양시 지축동 북한산 근처의 농장에서였다. 40년간 출판사를 경영했던 아버지는 80년대 초 은퇴 후 농장에서 나무 가꾸는 데 전념했다. 마치 종이로 희생됐던 나무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어느날 해질 무렵 나무를 보던 황씨의 눈 앞에 온 나무에 등불이 켜지고 잎새가 돋아나는 장면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96년, 황씨는 아버지에게 빚을 갚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떠난 지 7년만에 이 작품을 그렸다. 황씨는 가끔 이런 아버지의 음성을 상상한다. 『이거 못 보던 그림인 걸. 아주 그럴 듯 한데』.<박은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