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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돈 풀 때다(社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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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돈 풀 때다(社說)

입력
1998.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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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기업 자신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도, 정부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모두 『어어, 저기 기업들이 몽땅 죽어가고 있네』라며 바라만 보고 있다. 팔짱을 끼고 있는 건 아니다. 도우러 나섰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결과적으로는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다. 이 와중에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돈을 시중에 더 푸느냐의 여부를 놓고 입장차이를 보였다. 나라경제의 회복을 위한 최선의 고민 끝에 나온 입장대립처럼 보이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현장의 눈」으로 보면 한가한 논란이다.당장의 문제는 돈이 헛돈다는 점이다. 한은을 떠난 돈은 금융기관을 거쳐 일선기업한테까지 가야 하는데 도중에 되돌아 온다. 돈이 한은과 금융기관 사이만을 오가고 있다. 마치 심장의 피가 동맥으로 나가더니 곧바로 정맥으로 빠지는 꼴이다. 모세혈관을 통하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이치가 이렇다 보니 『돈이 충분히 풀렸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금융기관에 넘쳐나는 돈만을 보고 자칫 돈은 풍족하다는 주장에 빠질 수 있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간의 분기별 협상에서 2·4분기중 본원통화(RB) 증가율은 13.5% 수준으로 하기로 했었다. 통화증가율을 억제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런데 한은에 따르면 실제 이 기간중의 본원통화 증가율은 마이너스 8%선이었다. 금리가 훨씬 비싼 신탁대출까지를 합쳐 올 상반기중 은행 대출금은 2,892억원이 오히려 줄었다. 자금수요로 치면 지난해 상반기처럼 15조6,923억원이 늘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이렇듯 대출이 꽉 막혀 죽어있다 보니 한은의 본원통화가 IMF 합의수준은 커녕 마이너스 상태로까지 가라앉은 것이다.

기업엔 돈이 하나도 돌지 않는데 돈이 충분히 풀렸다는 주장만을 통화당국이 계속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이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기에 한은의 창구밖으로 돈뭉치를 던져놓는 것으로 한은의 할 일은 끝난 것인가. 돈이 금융기관에서 되돌아 오든, 기업에까지 나가든 그것은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이란 입장은 너무나도 안이한 도덕적 해이임에 틀림없다.

현장대책이 절실하다. 사무실 책상만을 지켜서는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현장의 신음 소리와 부도 대란을 직접 듣고 봐야 한다. 이것이 시각의 이동이다. 현장을 돌아보면 돈이 하나도 풀린 게 아니라는 사실, 당장 현장의 「돈의 물꼬」를 터줘야 할 때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경제장관들이 행사의 하나로 잠깐 기업현장에 들르는 스케줄도 나쁠 것은 없지만 별 의미는 없다. 실무자들이 소리없이 움직여야 한다. 지금 기업의 아우성은 꾀병이나 시늉이 아니다. IMF와 합의한 정도는 돈을 풀어야 마땅하다. 충분히 제대로 풀되 환수 걱정은 경제활성화로 인플레 위험이 커질 때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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