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추사 작품 등 250여점 출품영·정조 이후 실학사상의 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도「한국적인 것」이 형성돼 갔다. 어긋난 듯 완벽하고, 모자란 듯 꽉 찬 절제미는 조선후기로 오면서 표현양식이 더욱 다양해진다. 18세기 초·중기까지는 백자항아리(백자대호·白瓷大壺)와 각병(角甁)도 소박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나타낸 반면 후기에는 화려한 장식성이 두드러진다. 또 19세기에는 기복사상이 유입되면서 십장생 등 민화적 치장이 반영됐다. 문화의 향유계층이 민중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선의 문화는 일제 식민사관의 주장처럼 그렇게 고이고 썩어갔던 것이 아니다.
호암미술관이 10월11일(월요일 휴관)까지 호암갤러리(027712381)에서 열고 있는 「조선후기 국보전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전은 회화 도자는 물론 민예품 등 조선후기 문화의 실체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금강전도(金剛全圖),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군선도(群仙圖), 도자기인 청화백자죽무늬각병 등 국보 5점, 단원의 기우도강(騎牛渡江)과 유압(遊鴨), 궁중화가가 그린 영조어진(英祖御眞) 등 보물 14점을 포함, 모두 250여점이 출품됐다. 또 일본 도쿄(東京)국립박물관 소장 「미인도」(작자미상)가 8월31일까지 전시된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1813이후)의 미인도(간송미술관 소장)와 흡사한 이 그림은 혜원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혜원의 것보다는 섬세한 맛이 덜하고 왼손에 꽃을 들고 있는 등 장식적 요소가 강하다. 출품작은 정조의 글씨(9월1일 이후 전시) 등 궁중미술, 나전칠기, 불교미술, 장신구와 안방가구를 선보이는 여성의 공간, 문방규류 등이 전시되는 남성의 공간, 대동여지도의 목판과 해시계 등이 출품된 천문지리 등 8개 분야로 나눠 전시되고 있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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