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우리나라에서 「이상한」스포츠다. 스포츠 이상의 어떤 사회적 의미를 싫든 좋든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많고 시비도 많았다.요즈음 박세리로부터 촉발된 골프 붐을 보면서 혼란에 빠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골프가 국민대중에게 매우 친숙한 스포츠로 다가 온 느낌이다.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골프는 계층간 위화감과 통하는 대표적 단어 중 하나였다. 소수를 위한 「닫힌」 스포츠였으며 「힘」과 「돈」의 동의어로 통했다. 필드는 줄과 연(緣)이 중요한 이 사회에서 「있는 사람」들간의 사교와 청탁의 장(場)으로 비쳐져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공직자의 골프 금지령이 여전히 해금되지 않는 것을 보면 현정권의 골프관 역시 부정적인 가 보다. 그런데 정부는 박세리에게 체육훈장을 줄 방침이고 국민적 환영행사를 베풀려 했다. 물론 국위선양을 한 프로니까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골프 금지령이 유효한 나라에서 골프 붐이 분다는 것은 기묘한 풍경이다. TV는 골프중계를 따오느라 경쟁하고 파와 버디와 보기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해설하고 있다. 골프연습장에 사람이 붐비고 어린 딸의 손에 골프채를 쥐어 가문을 일으켜 보겠다는 사람들의 얘기도 들린다.
인간승리에 대한 환호와 열광, 그리고 골프의 복권(復權)논란과 무관하게 이런 것들은 보통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요즘 살아가면서 가치 혼돈에 빠지는 것은 비단 골프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많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었다는 「휴가비」만 해도 그렇다. 김대통령은 최근 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 의원 각각 89명과 46명에게 휴가비 명목으로 100만원씩을 봉투에 담아 나눠주었다고 한다. 굳이 『지금 때가 어느 땐데…』라는 TV광고 카피를 되뇌이지 않더라도 휴가철이 무섭기만 한 서민들은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식물국회에 민생현안은 가득 쌓아두고 틈만 나면 세비만 올리려는 의원들에게 휴가비를 하사하는 「자상함」도 지나치지만, 그 돈 1억3,500만원은 어디에서 난 돈일까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통령 월급이 얼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현정권의 햇볕정책도 혼돈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북한의 잠수정과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한 보복조치로 소떼 방북과 금강산 개발을 연기하면서 햇볕정책의 기조는 바뀐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기조는 무엇인가? 대북정책의 핵심은 정경(政經)분리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경제원리에 어둡다 해도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과 강제퇴출, 이에 따른 대량 실직사태 등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철학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어떻게 부합하는 것인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한 언론이 정부수립 50주년을 즈음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어떻게 독재자인 박정희(1위) 이승만(5위) 전두환(9위) 전대통령이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 열 명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지? 이게 진짜 우리 민도(民度)의 진정한 현주소인지 갸웃거리게 만든다. 하기야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도 복권되는 마당이니까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탈옥수 신창원을 영웅시하는 일부 분위기는 또 무엇인가? 공권력 불신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며 대리만족이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총체적 난국과 개혁의 소용돌이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머리만은 혼돈스럽지 않아야 할 터이다. 명료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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